퇴사하고 발레학원 2
발레학원을 다닌 지 3개월째다. 일주일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다녔다. 학원에 못 갈 때는 미리 보강 신청을 해서 보강을 갔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갈 기운도 다리도 잃어 지렁이처럼 마지못해 기어 왔던 첫 달에 비하면, 지금 체력은 꽤나 증진된 것 같다. (불행히도 유연성은 별로 증진된 바가 없다.) 이젠 수업 끝나고 조금 기운이 남는 상태가 되어서 다음 달 수업은 레벨 업을 해서 등록했다.
사람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항상 똑같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발레학원 다닌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발레 말고는 또 무얼 하냐고 물었지만 난 정말로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 빈둥대고, 침대에서 미적거리고, 가끔 집안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서 놀았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 일이 더 있는데 소문내기 부끄러워 말을 안 했다. 내년에 약속된 공연을 해야 해서, 새 희곡을 써야 하는 마감이 있다. 해서, 나는 한 달 전부터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쓰진 못했다.
반면 퇴사가 주는 짜릿함 - 늦잠을 자거나 평일에 노는 것, '내가 하던 그 짜증 나는 일을 지금은 내가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쾌감 같은 것 -은 3개월 동안 서서히 옅어져 이젠 마침내 사라졌다. 대신 세 달째 한 푼도 벌지 않고 모아 놓은 돈을 쓰고만 있다는 사실이 주는 경제적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연말까진 어쨌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저축과 퇴직금을 쓸 계획인데... 음... 생각보다 생활비를 아끼긴 쉽지 않고 요즘 물가는 너무너무 무섭다. 집에서 숨만 쉬어도 저축이 훅훅 줄어는 것을 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너무 어렵다.
대충 이러한 불안요소들로 요즘의 내 행동은 굉장히 변덕스럽다. 예를 들어 생활습관을 잡는 걸 우선순위에 두면 며칠 동안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러다 문득 불안감에, 갑자기 이렇게 아무 성과도 없이 날짜만 가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책상 앞에서 밤을 새본다. 생활습관은 금방 엉망이 된다. 한편 돈을 아끼는 걸 우선순위에 두면 안 먹고 안 사게 된다. 생필품조차 결제를 미루다가 결국 무언가 필요한 타이밍에 곤란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배달음식을 먹고 미용실을 예약하고 사치품을 사고 로또까지 산다. 쓰고 보니 변덕이 죽 끓듯 하네.
그러니 기분도 변덕스럽기 마련인데, 종종 행복하고 종종 울적해진다. 아직은 종종 행복해서 다행이다. 계속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생활 전반의 잔잔한 불안이 마치 발밑에 깔린 카펫 같아 종종 울적해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지금 나를 덜 울적하고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건 역시 규칙적인 운동이다. 퇴사하고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발레학원 등록한 일일 것이다. 웬만큼 우울한 날에도 학원에 갔다 오면 기분이 나아진다. 운동 만세!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늦잠도 자고 하루에 한 끼만 먹어서 자책감이 드는 하루였는데 저녁에 발레수업을 듣고 오니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면서는 갑자기 그런 생각했다. 퇴사하고 한참 동안 놀면서 보낸 지금 이 시기를 나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어쩌면 반년, 혹은 그 이상 몇 년이 될지도 모를 지금의 백수 시절. 그냥 '빈둥거린' 시기나 '겨우 버틴' 시기로 기억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너무 울적한 생각이다. 나는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 "그때가 참 풍요로운 시기였다"라고 기억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풍요. 갑자기 그런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으면 듣고 또 듣는다. 가사를 찾아보고 집에서 혼자 흥얼대며 외운다. ABBA나 이문세 노래 가사를 외워서 나한테 무슨 득이 되는 일은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시간을 이렇게 보낸다. 생뚱맞게도 지금의 내게는 풍요의 이미지가 이런 것과 비슷하다. 맘에 드는 노래를 끝도 없이 들으면서 가사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사를 외우는 것. 그럴 수 있는 시간과, 여유와, 마음이 내게 있는 것.
더 많은 영화, 책, 음악, 드라마, 유튜브를 즐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풍요로움의 일종이다. 호기심과 관심사에 따라 무엇이든 시도했다가 실망스럽다면 그만두는 것도. 그러면서 시간 낭비에 대한 자책 없이 '그냥 별로네' 하며 쉽게 잊는 것도. 트위터에서 발견한 좋은 (그러나 너무 긴) 기사를 끝까지 다 읽는 것도. 비싼 돈을 내고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발레 동작을 배워오는 것도.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아기들에게 웃어주는 것도. 어린이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산책을 많이 하는 것도.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풍요로움을 말할 때 내가 떠올린 것들이다.
샤워를 하다 떠올린 풍요로움에 대한 생각은 너무 강력하고 또 달콤해서 현시점의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인가? 모아둔 돈도 없고 젊음이 도망가는 마당에?' 하는 생각이 또 불안의 카펫을 타고 내 발바닥을 간질이지만, 훗날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냐는 질문에 불안은 다시 입을 다문다.
나는 백수인 동안은 풍요롭게 살 것이다. 최대한 여유롭고 목적 없이, 친절하고 게으르게. 이런저런 공상을 하면서. 더 많은 영화를 보고 더 많은 드라마를 보고 더 많이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헤매며 시간을 죽이면서. 더 많은 책을 빌려 읽고, 읽다가 관두거나 책을 베껴 쓰고, 전시를 보러 가고, 더 많이 걸으면서. 더 많이 구경하면서. 그리고 지금의 풍요를 또렷이 인식하면서.
그래서 언제나 두고두고, 그땐 삶은 가난해도 풍요를 누린 시기였다고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