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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Dec 15. 2019

어느 인권 변호사와의 인터뷰



 대략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인권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단순하게 인터넷으로 서칭 한 자료들로 초고를 완성했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디테일이 많이 부족했다. 인권 변호사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궁금한 것을 여쭤보고 싶었다. 


 어쩌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인권 변호사가 등장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담당 작가가 후배라 연락하게 되었고 그 변호사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변호사님, 저는 예전 어떠 어떠한 일을 실화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변호사님에게 시나리오 자문을 구하고 싶어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이렇게 무례하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날아온 답장은


 "죄송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많아 바빠 시나리오를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은 아주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그러다 얼마 후 변호사님께서 종로 어디에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제가 가도 되냐 문자를 보냈고 변호사님은 흔쾌히 오라고 답장 주셨다. 




 변호사님이 인권 변호사로 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어떠한 사람의 변호를 맡았는지, 어떠한 사건을 재심하게 되었는지 등등을 듣게 되었다. 궁금했던 부분은 질문을 통해서 해소를 했다. 강의가 끝나고 뒷풀이가 있다고 한다. 변호사님에게 제가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또 흔쾌히 오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아주 작은 호프집에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운이 좋게 변호사님 옆에 앉게 되었다. 변호사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내 옆에 50대의 아주머니가 말이 너무 많다. 세상 혼자 억울한 듯 이야기한다. 변호사님은 또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다. 아주머니는 말이 끝이 없다. 나는 귀를 닫고 혼자 짜증내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머니가 나에게 궁금증이 생겼나 보다. 아주머니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총각, 자네는 몇 살이야?"


 아주머니,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시 실제 나이였던 서른한 살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조금 무시당할까 봐 두 살 올려 대답했다. 


 "저 서른세 살이요."


  아주머니가 갑자기 반가워하시더니,


 "83년 생이야?" 

 "...네..."

 "우리 딸이랑 동갑이네..."


 아주머니가 갑자기 신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 딸 사진 보여줄까?"


 갑자기?? 그때, 변호사님이 혹시 담배 있냐고 물어봤고, 이때가 타이밍이다 싶어 변호사님에게 같이 담배 피우러 가자했다. 아주머니에게 담배 피우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곤 밖을 나갔다.  밖에서 변호사님에게 마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고 변호사님은 친절히 답해주셨다. 이제 다시 시나리오를 수정하면 디테일이 살 것이라 느껴졌다.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아주머니 때문에 다시 앉기 싫었다. 그래서 반대편 기자들이 있던 곳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그렇게 뒷풀이 자리가 끝났다. 


 집으로 가기 위해 나가던 찰나, 아주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리 딸 사진 보여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행동했다. 


 "네. 딸 사진 보여주세요."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딸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아무런 사심 없이 건성으로 


 "예쁘네요."

 "그래! 둘이 친구 하면 어울리겠다."

 "네네... 그럴게요..."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아주머니는 한 번 더 나를 잡았다. 


 "자네 혹시 페이스 북 해?"

 "네... 왜요?"

 "내 이름 ooo이야. 친구 신청해~"


 너무 어이없었다. 그래도 그냥 알겠다며 고개만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커피숍에서 변호사님과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대로 정리하면 더 좋은 시나리오, 더 재밌는 시나리오 나올 것 같아 기뻤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머니 생각이 문득 났다. 페이스 북을 열고 아주머니 이름을 검색했다. 


!? 


 아주머니의 프로필 사진은 나에게 보여준 따님 사진이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피드를 읽은 후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의 딸은 10년 전,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당했었다. 당시 재판부는 이를 성폭행으로 간주하지 않고 내연 관계로 보았고 가해자에겐 고작 10년 형에 그친 것이다. 아주머니는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회사의 공개사과와 가해자의 재심을 위해 변호사님을 만나 여러 조언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머니의 페이스북에는 온통 딸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아주머니는 10년 전, 잃어버린 딸과 같은 나이의 친구임을 알고 얼마나 기뻤을까? 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자신의 딸을 진정으로 소개시켜주팠을 것이다. 너와 같은 친구라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세상 혼자 억울한 사람, 피해자 코스프레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는 내가 알고 있던 사건이다. 부끄러웠다. 내 시나리오가 더 재밌어질진 몰라도 확실한 건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들어야 될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저 이야기에만 충실하려 했다.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것을 까먹고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주머니에게 모두 고백했다. 그리고 내가 사실 83년생이 아닌 85년생이라는 것까지도... 아주머니는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괜찮다고 했다. 




진짜루?....

그래도 친구는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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