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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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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K Oct 01. 2015

삶의 철학 3 - 관계맺기

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기독교의 경전 성경에서 언급하듯 태초에 인간이 하나의 개체로서 창조되었든,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를 둔 끝없는 진화의 과정의 과정을 통하여 유인원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재변신하여 인간답게 되었든 우리 인간에게 오늘날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존립시켜준 사회이고 또 그 속의 관계이다.   


무릇 개체가 모여서 이룬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며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잘났다 못났다라는 생각 조차도 결국 사회 속에서 누군가와의 혹은 누군가로부터의 상대적 비교 평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회는 그러므로 나의 밖, 즉 외부가 아니라 일부이며 또한 나를 존립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사회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맺게 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적응해나가는 것에 대해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과 그 과정에서 터득한  나름의 판단기준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현실에서 한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잘 하는 것은 삶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올바른 답을 찾고 현명한 관점을 유지하기 위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답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꾸준히 생각해왔다. 


 먼저 사회의 최소 단위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그것은 가족이다.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유성 생식(Sexual Reproduction) 을 하므로  종 유지의 최소 단위로서 가족을 필요로 한다. 가족은 그러므로 종 증식의 기초단위이자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에 대하여 매우 진지하고 적극적인 관계 정립을 필요로 한다. 가족 관계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과 정립 기준, 그리고 이에 대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사회적 관계는 모래성에 불과한 것이다. 


두 번째의 사회 관계는 지인이다. 

친구가 되었든 직장동료가 되었든 스쳐가는 사람이 아닌 반복된 접촉 관계는 지인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그 관계가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면서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는 지인과의 관계에서부터 복잡하면서

불확실한 관계의 변수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시간적  제약, 상대와 나와의 차이점에 대한 인식, 관계적 교감의 진화에 따른 감정 변화, 그리고 상호 관계 속에서 수반되는 대화, 접촉, 기타 다양한 상호 작용을 통해서 겪는 희로애락의 변주곡들이다. 


모든 관계는 가깝지 않을수록 이성적이지만 친밀해질수록 감정적 요소가 배가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사람과 친밀해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둘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관계의 중요한 화두가 있다.  즉, 한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친밀한 관계와 이성적 관계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는 점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친구를 사귀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판단 기준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혹은 안전하고 서로를 존중할만한 바른 사람을 잘 선별하여 가까이 하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은 관계의 현명한 선별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가족 외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때 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제 1순위로 세워야 할 것은 무엇보다 관계의 장기적 효율성이다.

즉,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의미에서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즉, 한번 맺게 될 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단단하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할 가능성이 낮다면 관계의 깊이는 가볍게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관계는 어차피 사라질 것이고 그렇다면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관계 관리이다. 


두 번째로 세워야 할 것은 관계의 신뢰성 판단이다.

조금이라도 믿음이 가지 않는 관계는 시작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친밀하게 다가오는 상대가 결코 믿음직스러운 관계만은 아니다. 어떠한 의도를 갖고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도한 친절과 호의를 항상 보여주기 마련이다. 신뢰감이란 그러므로 매우 신중한 관찰과 판단이 필요하다. 일관성이 없는 상대방이라면 신뢰를 함부로 주어선 안된다. 신뢰할 수 없다면 관계는 극히 이성적으로만 유지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관계의 갈등과 조화 요소이다.

인간은 각자 모두 다르며 같은 성향일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을 망각하고 갈등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높은 상대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에는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동양의 철학을 매우 중시한다. 어떤 이는 토끼나 양과 같은 성품을 지닌 반면, 어떤 이는 호랑이나 여우와 같은 성품을 갖고 있다고 본다. 똑 같은 성품끼리가 반드시 어울린 다는 것은 아니나 ,  서로 상극인 사람들은 매우 심한 소모적 관계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나 자신이 어떤 성향의 인간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넷째 관계의 애증적 판단이다.

감정적 상호교감이 매우 깊게 관계에 연계되기 시작하면 인간은 걷잡을 수 없는 정서적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 놓일 수 있게 된다. 이 충돌은 때로는 사랑으로 불꽃을 튀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증오나 번민을 낳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는 스스로도 어쩌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되는 가능성 높은 상황이지만 이것이 반드시 거부해야 할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즉,  앞서 말한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이 잘 판단이 된 상태라면 애증적 단계로 가는 것은 상대와의 매우 장기적이고 깊은 관계.. 즉 가족이나 가족과 같은 관계로 형성되는 좋은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 모든 관계는 반드시 이성적으로 시작하여야 하지만, 현명한 판단 기준에 의하여 그 관계들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좋은 상대를 선택하고 일단 선택한 관계는 장기적이고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감성적 노력을 수반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즉, 관계는 쉽게 맺지 말되, 한번 맺은 좋은 관계는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이  사회적 관계에 대한 무엇보다 훌륭한 자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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