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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K May 11. 2016

삶의 철학 14 - 종교가 필요한가?

사람들은  왜 신을 믿고 종교에 귀의하는가?

이 세상을 딱 두 개의 집단으로 단순화시킨다면 종교를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로 구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위대한 철학자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를 갖기를 거부한다고 한들 그것은 오직 주관에 불과할 뿐이며 여전히 지구에는 믿음을 가진 수많은 신도들이 존재한다.  


그 근거로 굳이 통계자료를 들춰본다면 2010년 기준 종교를 가진 지구인은 전체 인구의 84% 라고 나온다. 즉, 무신론자나 비종교인들이 소수란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 소수에 속한다.

                                                       (퓨처리서치센터, 2010)


또한 국내 통계에서 종교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가면 갈수록 종교를 가진 사람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고도화하고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도 오히려 종교의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단, 2015년 전후 통계에 의하면 무교 비중이 다시 더 늘어났다고 하는 자료도 있으며 최근의 대세는  무종교인의 확대로 가고 있는 추세임)


                                                       (한국 인구센서스, 2005)


결국 종교는 부인할 수 없는 대다수 삶의 일부다. 그러므로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무조건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생각 대신 과연 종교란 인간에게 어떠한 절대적 가치를 지녔기에 이렇게 지배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실재하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바른 사고일 것이다.  


나는 종교를 삶의 철학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 아니 믿게 되었는가?"


즉, 종교를 믿음으로써 인간이 얻게 되는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해석들로 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종교는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이다.

세상 무서운 것 없던 당찬 젊음과 찬란한 희망이 밀물 빠지듯 사라진 빈자리엔 막막한 실존적 고민들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그 문제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 풀기에는 너무나 버거우며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종교는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검증된 훌륭한 지혜들로 그 고민들을 함께 감싸 안아준다.

둘째, 인간은 변하지 않은 절대적인 무언가에 크게 기대고 싶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인간은 항상 변화를 원하지만 동시에 변치 않고 삶을 의지할 절대 진리의 등불을 찾고자 한다. 소싯적에는 돈, 지식, 권력, 명예와 같은 사회적 피조물들을 삶의 등불로 착각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며 모래성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이때 준거할 새 가치관을 찾고자 하며 종교는 가장 적절한 형이상학적인 매체가 된다.

셋째, 죽음 앞에 놓인 불안을 해소할 방법으로써 종교는 훌륭한 둥지이다.

자연의 순리가 만든 모든 이가 원하지 않는 죽음이 조금씩 다가온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를 얻은 인간은 불행히도 그 자아 덕분에 죽기도 전에 죽음이 뭔지를 알다 보니 불필요한 불안감만을 얻게 되었다. 싫어도 발버등쳐도 떨쳐낼 수 없는 죽어야 하는 진리를 극복할 무엇이 필요한 것인데, 종교만큼 죽음에 대하여 위안이 되는 답을 제공하는 피난처도 없다.

넷째,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외로움을 함께 떨쳐낼 수 있는 공동운명체로서 종교적 관계는 유용하다.

친교를 맺던 학교를 떠난 후 대부분의 사회관계는 필요에 따라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를 전제로 맺어지고 유지된다. 우리가 어릴 적, 학교 시절 만난 친구들이 오래가는 것은 이러한 이익과 거래를 전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를 믿는 종교 참여자들 간의 상호 관계 역시 본디 "진리"를 수업을 받는 학생들 간과 같이 같은 목적과 믿음을 가진 공동운명체로서 새로운 장기적 관계가 성립된다.

다섯째, 나의 가족도 결국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살아보면 가족도 결국은 영원한 일체가 아닌 또 다른 사회적 관계이며 독립된 자아의 합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가족은 뿌리이자 출발점이지만 결코 종착역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도 떠날 수 있으며, 가족이 나의 문제를 모두 해소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말 그대로 오직 나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가족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많은 문제에도 유효한 답을 제공한다.

그렇다. 일단 믿음만 가진다면 이렇게 종교는 만병통치약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나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종교가 제공하는 훌륭한 가치들을 대체할 수단이 존재하는가?


나는 " 네"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 수단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극히 개인적이며, 다수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유효 가치도 일시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을 스스로 구체적으로 찾아가다가 인생을 다 써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결과가 터득한 진리를 기반으로 스스로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로 삶이 귀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즉, 결국 길고 긴 시간의 사색과 번민을 거듭하며 자신이 득도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삶에 고민이 너무나 많다면 굳이 혼자 고통받지 말고 검증된 좋은 교리와 훌륭한 종교인들이 많은 종교를 찾고 귀의하는 것도 삶의 현명한 방편이 될 것이라 믿는다.  평생 신을 의심했던 톨스토이 역시 끝없이 회의와 번뇌를 거치지만 마지막 죽음에 이르러 종교에서 귀의하며 생을 마쳤다고 한다. 결국 신에게 그도 번민의 답을 맡긴 것이다.


다만 종교를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딱 한가지 충고한다면 세상에는 종교를 허울로 삼아 혹세무민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으니 검증된 교리를 가진 투명한 종교단체나 기관에 가능한 가볍게 참여하는 것을 권한다.  즉,  고충을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핑계로 개인적 유대 관계를 만들려는 목사나 스님과 같은 전문 종교직업인들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멀리 두라는 것이다. 자칫 이들 중 사이비인 사람에게  잘못 걸려들면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그들의 이익을 위해 평생 살아가야 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신을 껍데기로 삼아 자신의 탐욕을 숨긴 이들 종교인들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당신이 그들에게 의존하는 순간부터 경제적, 육체적으로 철저하게 착취할 것이다. 참 안타깝고 슬픈일은 그렇게 당하는 당신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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