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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K Jan 19. 2017

머리 쓰기 VS. 몸 쓰기

지적 노동과 육체노동 중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할까?

대략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머리를 쓰는 지적 노동이 있다. 두뇌 속에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사회 속에서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화이트칼라"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지적 노동의 일반적 특징은 두뇌에 축적된 지식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며, 보통 업무 프로세스가 비정형적이며 복잡하고, 단순 반복성이 낮은 편이다. 대신 육체 활용 측면에선 단지 말하는 입과 듣는 귀,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달성한다.  


다른 하나는 주로 몸과 힘을 쓰는 육체노동이다.  지적 노동과 반대로 어느 정도 한정된 지식과 스킬만으로도 노동을 시작할 수 있으며 업무가 정형화되어 있어서 현장 경험이 축적될수록 동일한 노동에서 더 많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육체노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육체적 노동력 자체의 고유 가치와 투입 시간이 부가가치 창출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면 으레 부모님들은 "공부해라.  공부 잘하는 게 다른 걸 하는 것보다 가장 나은 거란다."  대충 이런 말씀을 해오셨을 것이다. 부모님이 말하신 이 공부라는 것이 사실 지적 노동이다.  그런데 정말 부모님 말씀대로 두뇌 중심의 지적 노동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의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걸까? 현실은 부모님의 말씀대로 성실히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장기 취준생이라는 불확실성을 돌려주었다. 양질의 지적 노동은 사라져 버렸고 육체노동 역시 단순 일용직인 알바직들만 늘어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직업은 내 부모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이 아닌 시대가 만든 사회경제적 피조물일 뿐이다.


나는  노동에 대한 좀 더 현실적 답을 찾아가기 위하여 먼저 오늘날 세계 전체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노동의 변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 우리는 정보적 지식 가치가 소멸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즉, 객관화되고 체계화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는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과거엔 단순히 영어 단어를 아주 많이 암기한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고 사회적으로도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네이버나 구글만 치면 나오는 기능에 불과한데 누가 그 가치를 인정하겠는가?  즉, 단지 지식을 많이 머리에 넣어 둔 백과사전적 능력자는 그 엄청난 노력에 비하여선 형편없는 대접을 받게 된 시대가 된 것이다.


둘째, 모든 노동이 갈수록 단순화, 시스템화, 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지적 노동과 육체노동을 불문하고 기술의 발전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동의 범위와 고유성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제 평범한 개인들은 지적이든 육체적 노동이든 효율적 사업 시스템의 나사 수준으로 부품화 되어 가고 있다. 아마존이 최근 공개한 완전한 무인 쇼핑몰이나, 아이폰을 만드는 팍스콘이 로봇에 의한 완전 무인 생산공장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뉴스처럼 육체노동 영역은 이젠 단순화를 넘어 무노동화로까지 가고 있다.


셋째, 전문가라는 개념과 가치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면 전문가가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혁신적 기술이 끝없이 기존 지식과 노동을 파괴하고,  훨씬 더 효과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에 전문가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쓸모없는 지식을 지닌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세계가 그 예인데, 나이 어린 대학생들이 수십 년 경력과 내공을 지난 기존 전문가보다도 더 훌륭한 성과물을 내는 것도 바로 구조적, 개념적 혁신이 축적된 전문성보다 월등히 높은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새로운 변화는 평범한 지적, 육체적 노동의 힘을 갈수록 약화시키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첨단 기술과 고도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극소수의 뛰어난 지적 노동자들이나 거대한 자금력을 소유한 자산가들만이 이 변화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래의 논점으로 돌아와 보자. 이러한 대세의 흐름 속에 과연 나는 어떤 노동의 선택을 하는 것이 미래에 보다 더 현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미래는 육체냐 지적 노동이냐의 선택이 핵심이 아니라 그 어느 쪽이 되었던 "시대를 넘어서도 변함이 없는 나만의 노동 가치"를 만드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나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결론에는 어느 정도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다 지혜로운 노동을 선택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각 개인의 노동도 이젠 브랜드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쉬운 예로 설명한다면 파티시에가 되더라도 그냥 "빵집"을 만들지 말고 "내 이름을 건 나만의 레시피"를 꼭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레시피가 좋고 나쁘고, 내 이름이 더 알려지고 말고는 본질이 아니다. 레시피가 나쁜 건 개선하면 되고, 이미 훌륭하다면 그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입소문의 시간문제일 뿐이다. 조직에서 일하는 경우도 브랜드화는 필수적이다. 직장에서도 나만의 고유한 노동 가치가 어필되지 않으면 한낱 나는 부품일 뿐이다.


둘째,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 가치와 관계된 분야를 택해야 한다. 사람들의 취향은 시대를 흐르며 변하지만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들은 단시간 내에 쉽게 변할 수 없다. 워렌 버핏의 투자성향처럼 쉽게 부화뇌동하지 않는 전통적 가치, 예를 들면 의식주와 같은 산업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첨단 기술 등의 혁신으로 새롭게 등장한 산업보다는 안전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막걸리나 와인을 생산하는 주류사업은 수백 년을 흘러도 큰 변화 없이 흘러왔지만 한때는 최신 기술이었던 LP플레이어나 PDA 분야는 이제는 잊혀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셋째, 가능하다면 기계로 자동화되고 대체되기 어려운 노동 방식이 더 현명한 노동이다. 즉, 완벽하게 동일한 품질과 형태가 필수적인 대량생산 제조분야나 정보 축적을 통한 데이터베이스화가 용이한 지적 노동보다는 결과물과 노동 과정이 매번 다른 것이 더 매력적일 수 있는 분야가 노동의 장기적 존속 가능성을 높여준다. 결과가 항상 달라야 된다는 것은 자동화를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극단적인 예가 미술작품이 될 것이다. 예술품은 Originality가 곧 생명이므로,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닌 복제물이 되는 것이다. 헤어 스타일링이나 패션 디자인을 하는 노동도 비슷할 것이다. 매번 똑같은 형태로 머리를 자르거나 똑같은 옷을 매일 입길 원하는 고객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의상의 생산은 표준화되겠지만..

 

넷째, 나이가 많이 들어도 고유가치가 잘 소멸되지 않는 노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50대 초가 되면 은퇴 준비의 시기로 접어든다. 한참 일할 수 있음에도 이미 사회에서 그들의 노동은 평가절하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뭘까? 조직이 클수록 한 개인의 스킬과 전문성은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화이트칼라는 나이가 들면 쉽게 교체될 수 있다. 반대로 블루 칼라일 지라도 난이도가 높고 오랜 숙련도가 필요해 대체가 어렵다면 조직은 그의 은퇴를 연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쉽게 익힐 수 있는 단순하고 표준화된 노동들은 대부분 장기적 고유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보면 오늘날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나지만 불행히도 노동의 가치와 그 활동 기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적노동이냐 육체노동이냐가 노동 선택의 핵심이 아니라 자동화, 단순화해 가는 영역에서 일하기보다는 오래 일할수록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노동자가 되는 것이  오래오래 사회속에서 그 가치를 존중받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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