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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 Dec 08. 2021

시선의 무게

저세상의 귀찮-ism

 작가에 합격하기 전, 분명히 물고기니 양식장이니 브런치에 대한 글을 태연하게 썼지만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글감이 똑 떨어진 것은 역시 내 특성 때문이리라.


 나는 누군가 판을 깔아주면 어딘가로 조용히 몸을 숨기는 편이다. 물론 하라면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상황에서 내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귀찮아서"이다. 이제껏 내 인생은 야망과 열정 따위 없었기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브런치라는 매체의 공개된 장소에 질색하며 내 몸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던 생각조차 사그라들게 만드는 것이다.(다만 합격은 내심 기분이 좋긴 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생활방식 같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맘에 들지 않는 단락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입까지 다물어버리는 것은 조금 억울하므로. 그렇지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말을 하는 행위의 수준인데도, 시선의 존재를 여전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다. 겁이 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정말 글러먹은 열정의 귀차니스트구나 내심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조만간 또 실없는 글감이 나오겠지. 나는 계시를 받아 적는 제사장은 아니니까. 아마 생각은 곧 깔아 둔 판을 저 혼자 돌돌 말아와 나에게 얘깃거리를 속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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