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정말 덥다. 무지 덥다. 엄청나게 덥다. 갖가지 부사를 가져다 붙여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끈적한 여름이 당도했다. 여름을 크게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도 4가지 계절을 좋아하는 순서대로 배열한다면 제일 마지막에는 분명 여름이 있을 테다.
지금이야 선풍기며 에어컨을 마음대로 켰다 끌 수 있지만, 한 달 생활비가 음수였던 가난의 시절에 맞이했던 여름은 조금 달랐다. 끊임없이 부채를 흔들고, 보냉제에 수건을 돌돌 말아 안고 누워야 겨우 잠들곤 했던 그때의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울어버리기도 했더랬다. (아이고, 귀여워라.)
여름이 되면 특히 쉽게 바닥나는 인내심 때문에 나는 툭하면 입술을 꽉 깨물고 집으로 달아났다. 엉망인 내 상태를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문과 창문을 꼭꼭 닫고 숨었다. 통풍이 되지 않는 찜통 같은 집에서 땀을 흘리며 무릎을 끌어안고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고 또 바라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여름은 얼마나 시원한지.
어제는 마라탕을 배달시켰다.
소음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빨간 국물을 후후 불어 먹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쿨매트 위에 앉아있는 내 고양이가 신선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허공에서 마주치는 시선이 부끄러워 괜히 하루야, 그의 이름을 불렀더니 꼬리로 바닥을 팡팡 내리친다. 알았어, 잘못했어. 하나도 잘못한 것 같지 않아도 인간이 비위를 맞춰주어야지 어쩌겠나.
마음에, 정확히는 통장에 여유가 생기면서 집의 창문도 조금씩 틈을 넓혀 열렸다. 창문으로 누가 내 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모든 것을 창피해하며 숨겨왔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부끄럽고 나약하고 위태롭던 그때의 내 얘기를 자주 한다. 내 이야기를 통해 희망이라는 것을 누군가 주워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전엔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매일매일 테이크 아웃하면서 집 근처 빵집 사장님과 얼굴을 텄다. 한 번은 주방에서 빵을 굽는 직원들 몰래 이렇게 속삭이시기도 했다. ‘샷 추가는 서비스.’
그러한 순간을 만나면 마음에 미풍이 분다. 뭐 별것 아닌 상황을 미화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런 다정함을 몇 년간 쭉 그리워했던 찜통 속의 내가 있었으니 유난을 떨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테다.
지금은 비가 내린다. 산림청에 근무하는 친구 J는 비가 오면 산불 걱정을 안 해도 되어서 좋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비 오는 주말을 좋아하기로 한다. 비가 오면 조금 덜 더우니까 사람들의 마음에도 미풍이 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