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총량제

이 순간을 버티면 다음은 모두 네 거야.

by 낮의 그늘



지난밤부터 유독 운 나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문틈으로 물이 새어서 바닥이 흥건했고, 급히 멀티탭을 치우다가 스피커를 박살 냈다. 문 앞에 두고 갔다던 택배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그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주문한 배달 음식은 두 시간 뒤에 몽땅 불어 터져서 도착했다. 아침엔 큰 맘먹고 체리를 한 바구니 샀는데, 바구니 안쪽에 있던 체리는 모두 뭉개져서 맛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짓뭉개진 체리를 두 주먹 넘게 골라내고 나니 별안간 서러워졌다. 아슬아슬하고 찰랑찰랑하게 가득 채워진 물컵은 딱 한 방울의 물을 흘려 넣는 것만으로도 넘쳐흐른다. 툭 터져버린 설움은 마구잡이로 범람 중인데, 그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들이 너무나 사소하여 누구에게 하소연하기에도 민망했다. 싱크대 앞에서 입을 삐죽이다가 몇 알 남은 체리 중 한 알을 집어 먹었다. 과육이 툭 터지면서 상큼한 단맛이 향기처럼 퍼진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지만 벌창한 감정을 달래기엔 체리 한 알이면 충분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세상이 무너진 양 슬프고 외롭고 고독했는데 체리가 너무 달았다. 다음엔 바구니 안을 보여달라고 한 다음 체리를 사야지, 하고 과일 가게 주인을 용서했다. 자취생으로서 영특하게 사는 법을 하나 배운 셈 치자. 운 하나를 적립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언젠가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초록 신호를 받는 것처럼 어떤 일을 할 때 타이밍이 꼭 맞아떨어지는 ‘운이 좋은 순간’을 겪으면 불안해진다고.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행운을 미리 가져다 쓰는 것 같아 초조하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면서 인간에겐 평생에 걸쳐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말도 했다. 자신은 신호등의 녹색 신호를 받는 것에 만족하고 싶지 않으며, 사소한 불운에도 개의치 않고 행운을 모아 한 번에 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것이 나와 ‘행운 총량제’의 첫 만남이다.


‘행운’하면 단순히 네 잎 클로버 따위나 생각하던 내게 그 날의 대화는 꽤 강렬한 충격이었다. 단어가 가진 세계를 확장하는 순간이었달까. 일확천금이나 인생역전의 순간이 아닌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 운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친구로부터 ‘행운 총량제’를 건네받은 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나는 불행한 순간 종종 내게 남아있을 행운의 잔여량을 계산해보곤 한다. 나란 인간은 간사해서 인생 전반에 걸친 행운의 순간들을 모조리 까먹었기 때문에 아직 어딘가에 온전한 크기의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쁜 일을 겪을 때마다 남은 행운의 총량을 가늠해보는 버릇은 지난 10년간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친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말한 적이 없으니 아마 모를 것이다. 어쩌면 법칙 자체에 대해서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수많은 주저흔을 남기고 말던 때의 나는 가끔 해가 뜰 때 어쩌면 오늘은, 하는 은근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텼다.




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그가 관리하는 절대법칙 중 하나가 바로 행운 총량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증명할 방법이 없기는 해도 때로 나를 포함해 누군가를 위로할 때에도 자주 사용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야, 네가 이 시간을 버티기만 한다면 남은 행운은 모두 네 거야.


그러면 썩은 체리가 가득한 과일 바구니를 사버렸을 때에도, 새빨간 신호가 자꾸 네 전진을 막을 때에도, 물건을 망가뜨린 다음에도 다음을 기약할 이유가 생긴다. 오늘 행운 총량제를 만난 당신에게도 그 힘이 전해지기를. 이토록 지독한 순간을 버티고 나면 분명 언젠가 남은 행운을 몽땅 털어낼 날이 오리라 위안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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