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물건을 사면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가난하던 시절에 몸에 밴 절약 정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물건에 애정을 붙이곤 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안고 다녔던 푸른색 강아지 인형이라거나, 대학생 때 샀던 두툼한 카디건 같은 것들이 아직도 내 월세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다 할 수밖에.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모든 물건을 '애착화' 시키는 인간이라 일컫기도 했다.
얼마 전 이전에 사용했던 휴대폰을 다시 꺼내어볼 일이 생겼다. 지금 휴대폰이 현역 3년 차인 데다 거의 5년 동안 썼던 휴대폰이니까, 거기 들어있는 사진들은 길면 8년 전에 찍은 것들이다. 추억에 잠겨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 보다가 엄마와 함께 거리를 걷는 동영상 하나를 찾아냈다. 엄마가 촬영한 것으로 집 근처를 산책하는 도중에 내가 거리의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30초 정도 찍혀있었다.
뭐가 저리 신이 났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필름 카메라 효과를 내는 유료 어플을 막 산 직후였음이 기억난다. 가로수 뿌리를 대충 찍어도 있어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는 데다 최소한 20장 이상을 찍어야 인화를 시작할 수 있으니 아무 때나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어대곤 했던 것이다. 스무 살 후반 남짓의 딸을 흔들리는 앵글로 찍던 과거의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말어.'
사투리 섞인 투박한 그 말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때에도 엄마가 나직이 건넨 그 말이 사랑스러워서 SNS 어디다 적어두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정지된 화면 속에 묻는다. 내 마음은 변치 않았을까?
갓 서른이 넘은 인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면서 카메라를 꺼내는 일이 부쩍 줄기는 했다. 주변을 익숙한 것들로 채우는 것이 편하다. 안온을 좇는 습관은 그대로 굳어져 일을 할 때에도, 자유 시간을 보낼 때에도 늘 비슷한 선택을 한다. 새로운 사람은 무섭고, 낯선 것은 불편하다. 이런 나를 가리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
그러나 지금 누군가 내게 필름 카메라 하나를 쥐어준다면. 24장짜리 필름 한 롤을 건네며 찍고 싶은 모든 것을 찍어보라고 말한다면 나는 또 거리로 뛰쳐나가 그 날의 가로수를, 흩날리는 낙엽을, 자주 가는 카페의 메뉴판 따위를 찍을 것이다. 지하철 승강장에 뚝 떨어지던 빛이나 담배를 태우는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버려진 의자 같은 것들을.
어쩌면 엄마가 원했던 변치 않는 나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익숙한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힘을 간직한 사람으로 남는 것 말이다. 비록 새로 발견한 호수에 발끝을 담그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것을 변함없이 사랑할 힘을 간직하기.
변치 말자는 약속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던 이십 대. 그 시절의 흉터는 통증 하나 없었고 나는 오늘 먼지 쌓인 필름 카메라를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