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쓴다
아침 산책을 나갔는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았으므로 도로 집에 들어갈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작정 걸었다. 집에 들어가면 날씨와 기압에 져서 울기나 할 것 같았다(대체로 이 예감은 맞아떨어진다).
핸드폰과 텀블러를 소매 안에 숨기고 터벅터벅 걸었다. 나는 젖어도 핸드폰과 텀블러는 젖으면 안 되니까. 어느 순간 비가 멎었길래 ’개이득’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까만 모자챙밖에 초록색 덤불이 하늘에 깔려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건 덤불이 아니라 가로수가 우거진 광경이었다. 비는 그친 것이 아니었고 우거진 초록 장벽에 막혀 보도블록 한 개도 적시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 개이득이었다. 우산도 안 들고 나왔는데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다니. 날이 좋을 때는 떨어지는 꽃가루며 송화가루, 뭔지 모를 낙엽이 거추장스러웠는데 이래서 가로수를 심는구나 했다. 초록이 만든 안온을 뚫고 걸으며 나는 젖지 않았다.
공짜로 비를 피해 걷다가 나무 사진을 찍었다. 그렇잖아도 봄을 핑계로 산책길에 있던 이런저런 꽃들을 마구 찍어 두었기에 갤러리가 온통 자연이었다. 꽃 사진을 제외해도 우리 집 고양이 사진뿐인 갤러리는 진심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꽃이며 나무를 사랑하게 된다던데...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 말이 맞지 싶다. 자연은 조건이 없으니까. 나무는 내가 지 분홍색 벚꽃을 사랑하든 말든 그냥 비를 막아줬고 꽃가루 알레르기에 재채기를 하든 말든 꽃잎을 휘날려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천장에서(비 한 방울 새지 않으니까 이건 천장이 맞다) 벌레를 툭 떨구는 데에도 이유가 없었다.
나이 들어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평소엔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다가,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둘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자연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조건 없이 아름다운 건 자연밖에 없다. 젊을 땐 사람과 사회가 사랑스럽다. 정확히는 그것이 주는 것들, 인간관계에서 오는 이러저러한 재미와 사회망이 주는 여러 가지 혜택들, 그것을 탐닉하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볼 시간이 없는지도. 권력은 영원히 날 지켜줄 것 같고 재력은 언제든 나의 구원일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조건부에만 영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는 지나치게 진지한 생각들.
뭐 어떠냐. 나무 덕에 비를 피하는 순간 손에 텀블러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 꽤 자랑스러운 걸.
조금 걷다가 나는 한 1분쯤 내리는 소나기를 때려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다리 위에는 가로수를 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무거우니까. 어쩔 수 없었다. 비 사이를 막 뛰어서 건너편 가로수 아래로 숨었을 땐 회색 후드가 나 비 맞았소 냉소하듯 어둡게 물이 들어있었다. 그 다리가 어찌나 길던지 그야말로 쫄딱 젖어버렸다.
산책의 다음 챕터를 시작하며 젖은 옷을 툭툭 털어냈다. 그러면서 역시 사회와 인류는 사랑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랑받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망가뜨린다. 오늘의 열대성 스콜을 닮은 소나기는 경고일까? 엊그제 매일매일이 돈 룩업이라며 울던 어느 기후학자의 기사를 봤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