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우리들에게 가끔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한 번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회사 사장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사장님의 이름은 심상우라고 하셨는데 집안이 좋고 유능하며 똑똑하고 유머가 있는 분이라고 칭찬하셨다. 아버지는 그분과 회사에서 종종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신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 하루는 그분이 아버지에게 자신은 절대 안 죽을 거라며 자기가 죽으면 발바닥을 간지럽히라고 하셨단다. 그러면 자기가 바로 벌떡 일어날 거라고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고 하셨다. 어린 꼬마였던 나도 그 얘기가 우스워서 빙긋이 웃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그분은 머지않아 국회의원이 되셨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를 겸했는데 그분은 유능함을 인정받아 바로 대통령인 당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셨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대통령도 그분이 워낙 유머가 있어 늘 곁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와 같이 한가로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급 속보가 나왔다. 아버지와 나는 무슨 속보지 하며 유심히 뉴스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순방 중이던 버마 아웅산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뉴스였다. 우리는 설마 아니겠지 하며 TV를 지켜보았는데 그 후로 몇십 분간 아무런 자세한 내용이 없이 폭탄이 터졌다는 뉴스만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대통령은 무사하다는 소식과 하지만 같이 순방길에 올랐던 수행원들이 폭탄에 그만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당시 순방길에는 그분이 당 총재 비서실장 자격으로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순간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버지의 얼굴은 거짓말 같은 현실에 애써 당혹스러움을 억누르면서도 절대 그분은 아닐 것이라는 간절한 한 줄기 믿음이자 소망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참이 지나고 TV로 희생자 명단이 발표됐다. 희생자 명단에는 그분 이름도 들어있었다.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한순간 모든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지만 그 정적은 내게 가장 요란한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내 마음에 울렸다. 수행했던 이들 가운데에는 유일하게 합참의장 한 분만 아무런 부상도 없이 멀쩡했다. 야속한 생각이지만 합참의장이 서있던 자리에 그분이 서 계셨으면 어땠을까. 그분이 살으셨으면 어땠을까. 아버지도 나도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런 마음으로 TV를 지켜봤다. 그분의 안타까운 죽음에 아버지는 형제를 잃은 것같이 상심하셨고 그분의 유능함과 그분이 남기고 간 가족들을 생각하며 슬퍼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갈수만 있다면 그분이 누워계신 곳을 찾아가고 싶었고 그곳에서 그분의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싶었다.
개그맨 심현섭은 그분의 아들이다. 개그콘서트로 유명해진 심현섭이 아버지가 버마 아웅산에서 희생되셨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나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그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아버지에게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심현섭을 보면서 그분과 닮았다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유복하게 잘 자랐을 텐데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이후로 심현섭을 볼 때면 그분과 아버지가 동시에 생각났다. 개그콘서트로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는 비록 불행한 일을 겪었지만 잘 살아가는 것 같아 나도 너무 기뻤고 개그콘서트를 떠나 대중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을 때는 내 일인 양 나도 함께 안타까웠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김준호 씨는 당시엔 심현섭에 한참을 못 미쳤는데 하는 얄궂은 마음도 들었을 만큼.
어쩌다 가끔 방송에 심현섭이 나오기라도 하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심현섭을 본다. 심현섭이 홀로 되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보내온 사연들을 들으면서 심현섭에 대한 감정은 더 애틋해졌고 심현섭이 하는 일이나 반백 년이 넘은 나이에 이제야 자신의 반려자를 찾아가는 모습에는 나도 두 손 모아 응원을 한다. 한 번도 심현섭을, 그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지만 나에게 심현섭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분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이름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영원한 나의 친구이자 개그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