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억하며

무등산

by 소살리토

광주에는 가까이에서 광주 도심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무등산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라서 광주 시민들은 무등산을 자주 찾았고 주말이면 사람들로 늘 붐볐다.

아버지는 중년 때부터 주말이 되면 무등산에 오르셨는데 그럴 때면 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대학 시절 방학 때면 집에 머물렀고 취업해서도 3년간은 광주지사에 근무했기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 매주 산을 다녔다. 이후에도 명절이나 휴가 때 부모님 댁에 내려가면 나는 아버지께 무등산을 가자고 말씀드렸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 마냥 상기된 표정으로 기쁘게 등산 채비를 하셨다.

처음에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랐을 때는 한창 청년의 나이임에도 도저히 아버지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고 언제나 저 멀리 쳐져서 아버지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씩씩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을 내 달리기 하시듯 올라가시던 아버지는 뒤에서 나의 인기척이 멀어질 쯤이면 한 번씩 뒤를 돌아보시고 지친 나를 기다려 주셨다. 그렇게 뒤에서 아버지의 산행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나는 늘 의아했고 그 건강함에 감사했다. 아버지와 내가 경주하듯 그렇게 한참을 산에 오르면 무등산 중턱쯤에 있는 너덜겅 약수터가 나왔다. 아버지와 나는 젖은 땀을 닦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몸속 깊은 곳까지 무등산의 정기를 흘려보내려는 듯 달콤한 약수를 들이켰다. 약수터 아래에는 광주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어서 그늘진 나무 아래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고 세상의 모든 시름들을 머릿결에 나부끼는 한 점 바람결 사이로 쓸려 보냈다.

약수터를 뒤로하고 하산할 때면 아버지는 올라가실 때보다도 더 빠르게 뛰어가시듯 내려가셔서 나는 아버지의 뒤꽁무니마저도 몇 번씩 놓쳐버리곤 했다. 그렇게 하산을 해서 산어귀에 다다를 때쯤이면 산행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도토리묵, 파전, 막걸리를 파는 밥집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는데 아버지는 나를 언제나 보리밥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보리밥 두상을 시키면 보리밥을 비벼 열무에 싸 먹을 수 있도록 갖은 나물 반찬들과 된장국이 나왔는데 우리는 큰 대접에 담긴 보리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을 만큼 맛있게 등산의 허기를 채웠다. 세월이 한 참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무등산의 보리밥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맛있는 밥이었고 광주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 생각했다. 무등산에는 이제 보리밥집이 한 곳만 남아 있는데 내가 어쩌다 무등산을 가게 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보리밥을 먹을 때가 있다. 그 시절 그 맛은 아니었지만 배가 불러도 여전히 맛있는 보리밥이었다. 아마도 보리밥에는 아버지에 대한 진한 향수가 배어있는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보리밥일 만큼..

세월이 흘러가면서 아버지와 나의 산행 속도는 어느덧 같아졌고 같이 걷는 산행이 아버지의 나이 듦으로 다가와 내겐 한 조각의 안타까움으로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가시는구나. 아버지의 그 강인함도 세월의 흔적 속에 사라져 가는구나. 영원히 강하고 젊으실 것 같은 거인이 이제 내 옆에서 더디어진 발걸음을 내딛고 계시구나.

그 이후로 아버지와의 산행은 인생의 덧없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자국마다 느끼게 하는 시간들이었고 그렇게 동행할 수 있는 산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버지의 기력이 되실 때까지 함께 산에 올랐다. 마치 마지막 몇 줌의 모래가 그 끝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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