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게는 한없이 자애로우신 분이면서도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났을까 할 만큼 강인하고 카리스마가 있으셨다. 그런 아버지는 내 기억 속에 아주 드물게 겨우 맥주 한 잔 정도만 하셨을 만큼 술을 드시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으론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는 술을 드시기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평생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으셨을까 의아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셨고 많은 친구분들이 계셨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술을 많이 마시고 자주 마신다. 나도 몇 번 술을 끊어보려고 시도도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회생활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매번 포기를 하곤 했다. 술 먹는 관계가 더 심했던 아버지의 세대에 술 한잔 하지도 않고 그 많은 사회생활과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풀리지 않는 의문이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대단함으로 내게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술 마시는 나에게 한 번도 술 마시는 것을 탓하지 않으셨다는 것 또한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평생 담배도 하지 않으셨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담배를 배운다고 하는데 귀신 잡는 해병대를 나오셨음에도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가면 방안에 늘상 화로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긴 담뱃대에 잘게 썬 담뱃잎을 넣고 화로대에 불을 붙여 태우시거나 담뱃잎을 종이에 말아 피우시고는 하셨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담배 태우는 모습을 보시며 자랐을 아버지는 왜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을까 하고 나는 궁금해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기에 나 또한 절대 담배를 배우지 않겠다고 어릴 적부터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안 하는 것을 적어도 하나는 따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을 만났을 때 친구 몇몇이 담배를 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도대체 그 느낌이 어떤 것일까 호기심도 컸지만 어린 시절 나의 다짐을 깰 수 없었기에 나는 친구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만 마실 뿐이었다.
이후로 군대를 가서 훈련받는 짧은 휴식시간마다 담배 일발 장전을 외치며 다들 담배를 피울 때에도 나는 그냥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두더지 굴처럼 피어오르는 연기에 콜록거리기만 했다. 담배가 나를 가장 유혹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주윤발이 나온 홍콩영화 첩혈쌍웅에서 주윤발이 도넛 모양으로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날리던 모습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유행처럼 번졌을 때 나도 친구 따라 한번 흉내를 내보고 싶었을 때였고, 한 번은 거리에서 데모를 하다 눈물 콧물 다 흐르도록 매운 최루탄 가스 연기를 뒤집어쓴 채 거리를 헤맬 때 누군가 피우는 담배연기가 열이 날대로 나버린 얼굴을 너무나도 시원하게 스쳐 지나갈 때였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도 이제는 한 녀석을 빼고는 다들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는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모두들 쉽게 담배를 끊는 것을 보면서 아마 나였으면 못 끊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며 피우던 담배도 다 끊는데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불현듯 담배 생각이 났다. 그 순간 이제는 담배에 대한 나의 다짐도 아버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담배를 태울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날은 남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 벤치에 앉아 가느다란 오솔길 사이로 사이트러스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라벤더 들녘을 고요히 바라볼 때이거나 남미의 어느 허름한 바에서 귓가에 흐르는 재즈 색소폰을 들으며 탱고인지 살사인지 모를 두 남녀의 춤사위로 데킬라 한잔을 마실 때이거나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노년의 어느 하루 서녘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나신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