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사하고 3년 되던 해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를 갔다. 해외를 가려면 외무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던 시절을 막 지나고 정부는 세계화에 한창 드라이브를 걸었고 샐러리맨 성공 신화로 유명했던 대기업 CEO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카피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우리 회사도 그런 흐름에 발맞추고자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단기파견 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미국 뉴욕과 덴버, 캐나다 토론토, 프랑스 파리, 호주 시드니, 일본 동경에 각각 해외지사를 두고 있었는데 이들 지사에 직원들을 3개월씩 파견을 보내주는 제도였다. 나는 호기심에 신청을 했는데 1차, 2차 심사를 거쳐 운이 좋게도 최종 선정이 되었다. 그 당시 우연히 방송에서 호주 시드니를 소개해 주는 걸 보았는데 세계 3대 미항이란 말에 언제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터에 프랑스를 선택할까도 싶었지만 불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데다 이왕이면 영어권 나라가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호주를 선택했다.
파견 기간 마지막 2주 동안은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는 그걸 알자말자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호주로 오시게 했다. 그렇게 나와 부모님의 호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호주에 있는 동안 부모님과 함께 가볼 만한 곳들을 찾아 시드니 곳곳을 찾아다녔고 그중에 꼭 모시고 싶은 곳들로 부모님을 안내했다. 우리는 호주의 유명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 본다이 비치와 써큘리티 시티... 시드니의 멋있는 풍경과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라면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쁜 공원이 나오면 드넓은 잔디에 누워 시드니 시민 마냥 여유로움을 즐겼고 특히나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공원에서는 그 경치가 아름다워 부모님 모두 잔디에 한참을 누워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시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우리는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피자집에서 배부르도록 함께 피자를 먹기도 하고 시드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골프장에서 생전 처음으로 골프를 치기도 했다. 그러다 비행기를 타고 호주의 북동쪽에 위치한 케언즈를 찾아 세계에서 유명한 산호초 군락 위에서 스노클링을 즐겼다. 시드니 공항에 처음 내리셨을 때 온갖 꼬부랑 말과 온통 한국인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로 낯설고 조심스러워하시던 아버지는 어느새 호주 사람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할 만큼 호주인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부모님은 가끔 호주 이야기를 하셨다. 행여 TV에 호주라도 소개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가본 곳이라며 자랑삼아 말씀하시곤 했다. 호주는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나의 첫 여행지이기도 했지만 부모님과의 행복한 추억들이 시드니 곳곳에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주는 나에게 태어난 나라도 자라난 고향도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가고픈 향수로 남아 있다. 아마도 오페라하우스 근처 공원에 가면 아버지가 멋진 포즈를 취하며 잔디에 누워 나를 반겨주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