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시골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안 드시는 음식 없이 무엇이든 남김없이 다 잘 드셨는데 유독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셨다. 학창 시절에 아버지가 집에서 쉬실 때면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곤 했다. 형들은 잘 삶아진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퍼질 대로 퍼진 라면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꿀꿀이죽 같다고 놀리시곤 했는데 아버지와 나는 밥까지 말아가며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음식이 귀했기에 맛보다는 양이 많은 것을 최고로 여기셔서 그런 것 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위해 라면을 끓일 때면 면이 퍼지도록 일부러 시간을 들여 라면을 끓여 드렸고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정말 맛있다며 흡족해하셨다. 그래서일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한 참 지나서도 나는 불은 라면을 좋아했고 결혼하고 나서도 불은 라면을 끓이는 바람에 라면을 못 끓인다고 핀잔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불은 라면을 일부러 끓여 먹지 않지만 어쩌다 불어서 남겨진 라면 가닥을 보노라면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곤 한다.
아버지는 칼국수도 무척 좋아하셨다. 특히 해물이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고 손반죽으로 면이 쫄깃쫄깃한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나는 아버지와 여행을 가거나 결혼하고 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 일이 있으면 가끔 칼국수 맛집을 찾아 모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배가 부르도록 칼국수를 드셨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다른 특별한 음식을 대접할 것이 없을 때면 칼국수집을 향했다. 엄마가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칼국수 드시는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그런 경험을 불러 일으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3일 전에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 또한 칼국수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실지 알았더라면 더 좋은 음식을 드시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있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요즘에도 가끔 칼국수집을 가곤 한다. 여전히 맛있는 칼국수를 보면서 그 맛있음에 한없이 얄밉기도 하고 더 이상 칼국수를 드실 수 없는 아버지 생각에 잊고 지낸 그 빈자리가 큰 파도가 되어 밀물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