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지붕에 검붉은 기와를 올린 한옥 주택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오랜 샛방살이 끝에 이 집을 지으셨고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방에서 방을 이어주는 툇마루 너머로 조그만 마당이 있었고 마당 안쪽 끝에는 수도가 있어 한 여름이면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기도 했다. 마당의 벽 쪽으로는 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은 조그만 정원이 있었는데 그중에 사철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뽐내며 마당 한구석을 당산나무처럼 지키고 있어서 우리 집은 사철나무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원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장독대가 있는 옥상이 나왔다. 어린 시절 나는 옥상에 자주 올라 집 밖의 세상을 어린 눈으로 호기심 있게 바라보곤 했다. 길가에서 구슬치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 생선을 담은 고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 종을 딸랑이며 수레를 끌고 가는 두부 장수, 큰 가위로 현란하게 엿을 잘라주는 고물 장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뻥하는 벼락같은 소리 뒤로 우수수 쏟아지는 튀밥을 파는 아저씨... 그 시절 옥상은 나에겐 세상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들을 관찰하는 배움터이자 혼자서 독립적으로 머물 수 있는 호기심 가득한 공간이었다.
시골에서 훌훌 단신으로 도시로 올라와 어머니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으시고 여러 샛방살이를 거치며 푸르른 젊은 시절 손수 마련하신 한옥집은 아버지가 은퇴하실 때까지 우리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나는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한옥집 꿈을 자주 꾸고는 한다. 이 한옥집에서 아버지는 회사를 다니며 어머니와 우리 삼 형제를 부양하셨다. 아버지는 부지런하셔서 매일 아침 일찍 아침을 드시고 출근하셨고 시계처럼 정확하게 퇴근하시어 집에 오셨다. 아버지가 출근할 때면 우리 삼 형제는 모두 마루까지 나가서 “다녀옵셔~” 하며 아버지께 인사했고, 퇴근하고 집에 오실 때면 똑같이 마루로 나가서 “어서 옵셔~” 하고 마중했다.
어쩌다 아버지가 퇴근이 늦으시는 날이면 어머니는 가장 먼저 담으신 아버지 밥그릇을 행여나 식을까 봐 수건으로 감싸서 안방 아랫목에 두었고 우리 형제들도 부주의로 밥그릇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했다. 그러다 몇 번 아버지의 퇴근이 너무 늦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조바심으로 그냥 방에 있지 못하고 옥상에 올라가 아버지가 걸어오실 길목 어귀를 경계병보다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낮에는 세상을 접하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우리 집 옥상은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저녁에는 혹여나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멀리 길 끝에서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보이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애태움의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옥상 위에서 아버지가 오실 길목을 바라보는 것이 지쳐갈 때면 가끔 밤하늘을 한없이 올려다보곤 했다. 늦은 밤 한옥집 옥상 위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별들이 제각기 밝기를 달리하며 여기저기 빛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유난히 끌리는 한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그 별로 끌려 올라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가끔씩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보게 될 때면 늦은 밤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 소년의 나를 떠올리게 하고 그 소년이 올려다봤던 장독대가 놓인 옥상을 그립게 한다.
그렇게 밤하늘 별을 보면서 망부석처럼 아버지를 한없이 기다리다가 드디어 어둠 속 너머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내 마음속 두려움과 애탐은 어느새 저 멀리로 쫓겨나 버리고 나는 한달음에 옥상을 내려와 제일 먼저 아버지께 “어서 옵셔~”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