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억하며

가마미 해수욕장

by 소살리토

아버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시계 추처럼 하루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시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에 퇴근하셨다. 아버지는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해병대를 나오신 기백 때문이신지 아버지 내면의 강인함이신지 늘 씩씩한 걸음걸이로 다니셔서 언제나 한결같은 그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를 부지런한 가장이라고 말들 했었다.

그러다 일요일이 오면 아버지는 우리 삼 형제를 모두 아침 일찍부터 깨워서 동네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를 따라 목욕을 가는 것은 늦잠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너무 싫었지만 목욕탕에서 아버지가 때를 밀어주는 것이 너무나도 따가워서 나는 종종 어리광을 부렸다. 아버지는 형들을 차례대로 때를 밀고서도 여전히 힘이 남으셨는지 나는 아버지에게 한 번 때를 밀고 나면 온 피부가 벌겋게 변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바탕 쓰라림의 고통이 지나고 목욕탕 문을 나설 때면 나는 언제 목욕하기 싫었냐는 듯이 기분이 상쾌해졌고 무엇보다 목욕이 끝나고 사주시는 딸기우유는 그 모든 짜증과 고통을 한 번에 잊게 해주는 달콤함이었다.

내가 자라 아버지가 되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목욕탕에 가서 아들 하나를 씻기는데도 땀이 삐질삐질 흘릴 만큼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버지는 어떻게 우리 삼 형제를 혼자 힘으로 다 씻기셨을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아버지의 강인함과 정신력과 투철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월요일, 화요일,... 일요일을 살아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우리 가족은 주말이나 일요일에 한 번도 나들이를 가거나 소풍을 가거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을 오가며 일하셨고 일요일에 아들들과의 목욕이 유일한 쉼이었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한 여름 때였다. 그날이 일요일이었는지 아버지의 휴가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먹을거리와 옷가지들을 준비하셨고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정신이 없는 통에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 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 준비가 되셨는지 큰 짐들을 손에 들고 형들과 나를 데리고 부랴부랴 대문 앞을 나섰다. 이것이 내 어린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여행이었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곳이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이었다는 것,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갔던 것, 바다 위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두려운 마음에 어린 손으로 튜브를 꽉 움켜잡고 떠 있던 것, 오르락내리락하는 튜브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들 사이에 펼쳐진 모래사장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애태웠던 마음, 그러다 한 번씩 입속으로 들어오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짜디짠 바닷물에 무엇이 그리 서러웠던지 흘렸던 눈물, 온몸으로 느껴졌던 바닷물의 끈적거림과 모래의 꺼끄러움, 아버지, 어머니는 도대체 왜 여길 데려왔을까 하며 스쳐 지나갔던 원망, 과연 이대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며 절실하게도 돌아가고팠던 집 생각...

하지만 그날의 가마미 해수욕장은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기에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다시 한번 되돌아가고픈 시간으로 내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이 세상에 가장 가고 싶은 해변을 꼽는다면 나는 그 시절 그 가마미 해수욕장을 택할 것이다. 그곳엔 청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개구쟁이 형들이 있고 소심하고 여린 내 손을 어느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가족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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