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 , “허억”, ... , “헉”“헉”“헉”
“너 왜 그러니? 숨소리가 이상한데”, “얘가 숨소리가 이상한 것 같아요”
여느 때와 같이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가로이 둘러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허억” 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점점 더 호흡이 가파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나에게서 나는 소리인 것도 모른 채 나는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급해진 목소리로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그리고 이내 두 손으로 내 이마와 온몸을 어루만지던 어머니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하시면서도 당황해하지 않으시고 바로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거셨고 작은아버지가 알고 계신 소아과를 물으셨다. 그리고 부랴부랴 옷가지들을 챙겨 입으시고 나를 들어 업고서 어머니와 함께 급하게 대문 앞을 나가셨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숨 쉬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체격이 크신 편이 아니었는데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셨는지 의아할 정도로 대문을 나서자마자 나를 업은 채 급한 걸음으로 내달리셨다. 거친 숨을 내쉬며 아버지의 등 뒤에 업혀 있던 나는 이러다 아버지가 넘어지시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혹여나 내 숨소리가 아버지를 더 재촉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어 최대한 숨소리를 감추려고 했지만 나는 점점 더 크고 빠르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호흡이 가파올수록 옆에서 나를 지켜보며 뛰어가던 어머니는 얘 숨소리가 더 급해져요, 이러다 숨을 못 쉬게 될 것 같다고 아버지께 말했고 아버지는 행여나 당신의 늦은 발걸음에 내가 잘못되기라고 할까 봐 안감힘을 다해서 달리고 달리셨다.
그날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옆에서 아버지와 나를 위해 우산을 씌워주며 달리고 있었고 달리는 속도에 조그만 우산으로는 아버지와 나를 향해 내리는 비를 다 막아주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어깨는 빗물로 젖어갔고 빗물은 흘러 등에 기댄 내 조그만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희한하게도 내 볼에 닿는 빗물은 따듯한 온기를 담고 있었고 나는 그 온기에서 정신없이 질주하는 아버지의 땀에 젖은 체취와 진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빗물인지 아버지가 흘리는 땀인지 모를 그 물방울은 세상에 태어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가 가장 아버지와 밀착하여 느꼈던 아버지 그 자체였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날밤 아버지의 땀에 젖은 체취와 행여나 나를 떨어뜨릴까 온 힘을 다 쏟고 있던 팔 근육들 사이사이 드러나 있는 힘줄들과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먼 길을 내달리며 폭주 전차처럼 고동치던 심장의 박동들이 숨에 헐떡이는 막내아들을 등에 업고 1분 1초가 급박했던 아버지의 가슴속 모든 감정들과 함께 아버지의 몸을 타고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졌다.
작은아버지가 알려주신 김진홍 소아과는 집에서 40여 분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진료를 하고 있었고 나를 보신 의사 선생님은 급성 편도선염이라고 하시며 주사를 놔주었고 빨리 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큰 숨을 내쉬셨고 얼굴에 안도의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커서 가끔 그 소아과를 지나칠 때면 집에서 그 먼 거리를 아버지는 나를 업고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어떻게 달려갔을까,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는 과연 내 아이를 들쳐 업고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날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진정한 슈퍼맨을 만났던 것 같다. 이 세상 누구보다 힘이 세고 지칠 줄 모르는 슈퍼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