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께 매를 맞지 않았다. 내가 대학입시에 떨어졌을 때 한번 낙심하시고 안타까워하셨을 뿐 단 한 번도 나를 야단치신 적도 없었다. 형들에게는 손에 꼽을 만큼 야단을 치셨던 기억이 있지만 나에게는 큰소리조차도 내신 적이 없었다. 내가 커서 친구들을 사귀고 이런 아버지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었다.
아버지는 해병대를 나오실 만큼 혈기가 넘치고 강인한 분이셨지만 자식들에게만은 언제나 유하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이 특별히 어긋나지 않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셨고 모든 것을 어머니께 맡기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병대를 나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도 동네에서 지나면서 보이는 평범한 군인 아저씨 정도로 생각했을 만큼 나에겐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매를 들거나 야단을 치신 적은 없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삼 형제에게 자주 말씀해 주셨다. 나는 아주 꼬맹이 시절부터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에 재밌어했고 늘 귀 기울여 들었다. 동화책이나 그림책도 없던 그 시절에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백과사전처럼 흥미롭고 드라마처럼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서당을 다니셨기에 아버지의 입에서는 명심보감과 사서삼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고 그 말씀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린 나이였지만 저절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형제간 우애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크면서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입시를 합격하자마자 가장 먼저 사서삼경을 읽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매를 들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가르쳐준 말씀들을 통해서 나에겐 매를 통해서 배울 수 없는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도리들을 깨우쳐 주셨다.
내가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나는 여러 번 아들에게 매도 들었고 언성 높여 야단도 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매도 맞지 않고 야단도 맞지 않은 나는 정작 내 아들에게는 너무나 완고하고 엄격한 아버지였다. 아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나는 선의로 포장된 체벌을 가했다. 지나고 보니 아들이 잘되라고 했던 체벌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아이의 감정만 상하게 했을 뿐이라는 것을 뒤늦게 뉘우쳤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자랐지만 아버지만큼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강인하게 살아오신 분이 어떻게 자식들에게만은 그렇게 유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도 틀니딱딱이라고 취급받는데 그 당시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자식들을 훈육하실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