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제주 여행기

J와 P

by 소살리토

드드드드~ 드드드드~

“응, 재환아”

“여행 계획은 짰어? 일정이랑은 어떻게 돼?차량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아봐야 해서 빨리 짜서 알려줘~”

“재환아, 이제 설도 안 지났어~ 2월쯤에나 짜려는데. 그때 날씨랑 제주도 상황도 보면서. 뭐가 그렇게 급해~그때 가서 해도 괜찮아~ 짜는 대로 알려 줄게, 걱정하지마~”

설을 바로 앞둔 1월 하순 어느날 재환이에게서 제주도 여행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제주도 여행 자체도 깜박 잊고 있었던 차에 재환이 전화를 받고서야 제주도 여행을 떠올리고는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천천히 하자하고 기억속에서 잠시 덮어두었다.

드드드드~ 드드드드~

“여행 계획은 다 됐어?”

2월 초에 재환이에게서 다시 여행 일정을 묻는 전화가 왔다. 이제 나도 슬슬 압박이 왔다. 마감 시한을 앞둔 작가가 된 기분이 들어서 더 독촉을 받기 전에 원고를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침내 빈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쳤다.

나는 지금은 p로 물들어가려고 하는 j이지만 예전에는 완벽한 대문자 J였다. J는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은 계획이 반이라고 할 만큼 계획하는 것 자체가 J의 즐거움이자 여행이 주는 모든 설렘의 시작이다. P는 그런 J의 계획에 답답해하지만 P는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J가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계획하는 것이 J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좋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J가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에는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하다. P에게는 꽉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 피곤하고 재미없게 느껴지지만 J에게는 그렇게 ‘빈틈없이 완벽하게’ 짜주는 계획이 상대를 위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은근히 P로부터 ‘잘했어~ 역시 당신이야’하는 인정을 기대하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J가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J가 ‘쓸데없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P에게는 가장 ‘쓸모 있는’ 것이라는 것을. P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다 보니 J가 P를 위해 공들여 만든 계획은 J만의 헛고생으로 끝나고 P로부터 기대했던 인정은 불만으로 되돌아오는 때가 많다.

대문자 J였던 나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이란 ‘잘 짜여진 계획’이 아니라 ‘같이 여행하는 사람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런 깨달음 뒤로 나는 대문자 J에서 j로 그리고 점점 더 p가 되어가려고 하고 있다. 여행에서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빈 종이에 먼저 친구들이 가고 싶고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우선순위로 썼다. 인터넷으로 평점과 리뷰들을 확인하며 제주도의 가볼 곳과 맛집들을 찾았고 나름의 기준으로 별점을 매겼다. 종이에 써놓은 장소들을 지도 위에 배치했다. 4일 일정에 맞춰 이동 동선이 최소화 되도록 장소들을 선별했다. 몇몇 추천해 준 곳과 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동선에서 벗어난 장소들을 지워냈다. 마침내 이제 후보 리스트들만 남았다.

여행 일정을 짜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생각해 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크게 생각해 두었던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을 해주게 하고 싶었다. 그동안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일정이 ‘미스터 두리안 카페’와 ‘중문별장 커피 오마카세’이다.

이번 여행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을 위해 특별히 쉼과 여유가 있는 여행이길 바랬다. 일정에,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들을 모든 일정마다 넣었다. 가는 때가 3월 초라 그 시기에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유채꽃 명소들도 여정에 포함했다. 제주도는 비가 자주 오기에 실내와 실외 일정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유명하고 다양한 음식들과 맛집들이 많아서 모든 일정마다 각기 다른 제주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나서 이제는 독촉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작가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침내 친구들에게 여행 일정을 보냈다.

작가의 이전글젊은 그들 제주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