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삼다도라 하는 제주도는 여자도 많고 돌도 많고 바람도 많지만 비도 자주 내린다. 내 기억에는 제주도를 갔을 때 날씨가 계속 맑았던 때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주도를 가려고 할 때면 특별히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변덕스러운 여인네 같은 마음을 지닌 곳이 제주도가 아닐까 한다. 예상할 수 없기에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곳이 제주도인 것 같다.
여행을 며칠 앞둔 날 몇몇 친구들이 날씨 걱정을 했다. 우리 여행 기간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나만 빼고 친구들 모두 비옷을 준비했다. 제주에서 보니 재경이는 비 올 때 할 것들이 없을까봐 걱정했는지 화투, 윷놀이, 보드게임들을 준비해 왔다. 역시 파워 J 다웠다. 빙긋이 웃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재경이랑 다니면 걱정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비가 올 것을 염두해 두었다. 그래서 일정마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을 넣었다. 특히나 재환이가 추천해 준 아쿠아 플라넷은 하나의 보루였다. 다만 꼭 비가 오지 않길 바랬던 시간이 있었다. 하나는 유채꽃을 볼 수 있는 휴애리 자연공원이고 하나는 종보가 추천해 준 곳으로 제주도의 바다를 풍경으로 산책을 할 수 있는 송악산이었다. 친구들은 비 오는 것을 걱정했지만 이 두 곳만 아니라면 나는 비올 때 갈 곳들도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여미지 식물원이었다. 제주도에는 풍경이 아름답고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들이 많다. 그 카페들도 비오는 날 갈 수 있는 좋은 선택지들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도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지 모른다.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여행 3일째 늦은 밤 희근이 재경이 그리고 내가 빗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일도 제주도의 비가 우리에게 준 잊지못 할 추억의 하나이다.
다행히 여행기간 비가 내리긴 했지만 우리가 야외에서 움직이는 시간에는 비가 우리를 피해갔다. 어쩌면 우리들의 염원이 제주도의 하늘까지 닿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전직 신부님인 재경이가 파워 J의 능력을 발휘해서 날씨까지 계획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를 반 백년 살다 보니 어떤 것에 특별히 기뻐하지도 낙심하지도 않게 되었다. 특별히 좋은 일도 특별히 나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추억이 되고 궂으면 궂은 대로 다른 추억이 될 거라는 것을 살아오는 동안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일도 그랬다. 젊은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옳고 그름이 뚜렷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어떤 것도 옳은 것은 없고 어떤 것도 나쁜것도 없다는, 그것이 그것이라는, 큰 차이가 없다는, 그 사이의 경계선들이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이것이 늙어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