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3일째 밤에 제주도에 비가 내렸다.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을 앞둔 날이었는데도 그동안의 여정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마지막 밤을 가족과 오붓하게 보내고 싶었는지 다른 친구들은 일찍 숙소로 돌아가고 희근이와 재경이 그리고 나만 공용 거실을 지키고 있었다. 제주도도 우리를 보내기 싫었는지 열어둔 문밖으로 빗소리가 운치를 더했고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도의 청량함을 그대로 머금은 빗소리와 함께 제주도의 흙냄새가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사이로 짙게 묻어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우리들의 공간으로 그렇게 밀려드는 밤이었다.
나는 낚시를 싫어한다. 누군가는 시간을 낚는다고 말하지만 내 눈엔 낚시가 가장 할 일 없고 쓸모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할 때 늘 앉아있기에 뭔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이왕이면 몸이든 뭐든 좋은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낚시를 싫어했다. 낚시하러 저수지든 호수든 멀리 찾아가야 하는 것도, 징그러운 지렁이를 바늘에 끼우는 것도 싫었을 뿐더러 행여나 운 좋게 물고기가 낚였을 때 물고기 입에서 낚시바늘을 빼내는 일은 더더구나 싫었다. 이게 뭐가 재밌다고 낚시를 할까하며 낚시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희근이와 재경이는 오래전에 낚시를 즐겨 했다. 희근이는 한때 주말이면 매번 낚싯대를 둘러매고 낚시터를 찾아 나설 만큼 낚시광이었다. 그런 희근이를 따라 나도 몇 번 같이 낚시하러 갔지만 여전히 낚시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한 두 시간도 못버티고 라면만 끓여먹고 오기 일쑤였다. 낚시하는 희근이를 보면서 진지하고도 걱정스런 마음으로 몇 번 “낚시가 재밌어?”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면 희근이는 흔히 보지 못하는 가장 환한 미소로 “재밌지~”하고 또렷하게 대답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런 희근이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우연히 낚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지금은 희근이도 재경이도 낚시를 하지 않는다. 여전히 낚시를 좋아하지만 낚시하러 다니지는 않는다. 재경이가 낚시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을 꺼냈다. 옆에 있던 희근이가 얼씨구나 맞장구를 쳤다. 나는 혼자 다시 머리가 겨우뚱해진 채 재경이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 늘 상냥하고 부드러운 재경이는 사뭇 단호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낚시 이야기를 했다.
재경이는 신부님이었다. 아무리 신성이 깃든 곳일지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겪어야만 하는 공동체 속성 안에서 고상하고 거룩하게만 행동해야 하는 신부님, 신도들의 모든 짐들을 같이 짊어져야 하는 신부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고 묵묵히 수도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신부님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순간에도 함부로 들어내지 못하는 감정과 모든 짐들을 재경이는 낚시줄에 매달린 찌 하나에 실려 보내었다고 했다. 빈 호숫가 위에 덩그러니 홀로 떠 있는 찌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 속에 가득했던 모든 상념들이 그 찌 하나에 실려지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찌가 요동칠때면 찌 위에 놓여진 모든 상념들은 다시 깊은 물 속으로 추돌처럼 내려앉아 이내 저 멀리로 사라져 간다고 했다. 특히나 밤에 하는 낚시는 모든 어둠이 내려앉은 칠흑만이 존재하는 텅 빈 공간 속에서 오롯이 영롱하게 빛나는 찌의 움직임 만이 세상에 남아 있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모를 희미해진 경계 위로 하늘과 물빛 두 갈래로 드리워진 찌의 우아한 괘적 속에서 마지막 한 올까지 남아있던 잡념들마저 모두 지워진다고 했다. 옆에 있던 희근이도 재경이와 같은 말을 했다. 희근이가 낚시를 다니던 시절을 잘아는 나는 그때야 갸우뚱 해졌던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희근이가 “재밌지~”라고 했던 너무나도 짧고 또렷했던 그 대답의 의미를 나는 십 수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왜 그리도 주말마다 희근이가 낚시를 가야만 했는지를 떠올리며 나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저며오는 것을 느꼈다.
낚시는 잡는 일이 아니라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행복은 가져야만 오는 것이지만 평안은 비워야만 오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평안은 역설적이게도 버리고 비워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낚시는 세상의 모든 취미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평안은 오롯이 스스로 홀로 비워내야만 오는 것이기에 가족도 친구도 함께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시절 낚시를 다니던 희근이에 대한 가슴을 저미게 했던 조그만 미안함도 이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