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억하며

푯대

by 소살리토

나는 아버지께 한 번도 매를 맞아 본 적도 없지만 한 번도 말썽을 피우거나 심려를 끼친 적도 없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놀다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집에 귀가해 손발을 씻지 않아서 몇 번 어머니께 매를 맞았던 게 전부다. 나는 삼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형들과는 터울이 있어서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말수도 없는 조용하고 순한 아이로 자랐다. 어린 시절 방학이나 명절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댁에 놀러 가곤 했는데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할머니는 나를 보며 처자도 이런 처자가 없다고 늘상 말하셨다. 할머니 눈에도 내가 말썽 하나 안 피우는 너무 순한 아이로 보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어머니는 동네 친구분들과 자주 여행을 다니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가 나를 돌봐 주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다. 어머니가 여행 가시고 난 집에서 나는 혼자 방에서 놀거나 혼자 노는 것이 지겨워질 때면 옥상에 올라 동네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을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가 여행에서 돌아와 외할머니께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 때면 외할머니께서는 늘 얘는 얘도 아니다고 하셨다.

내가 순하게 자랐다고 해서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엄친아도 아니었다. 나는 말썽만 부리지 않았을 뿐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아무런 꿈이나 목표 없이 그냥 평범한 아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다. ‘메멘토 모리’.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봤던 역사 속 전쟁 드라마 한 편은 아직 발걸음도 떼지 않은 내 인생에 벼락과도 같은 충격을 남겼고 나에겐 채 시작도 하지 않은 생에 대한 허무함으로 내 의식 깊은 곳을 채우게 되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그동안 내면에 숨겨져 있었던 삶에 대한 의문들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숙제처럼 내게 다가왔고 그때부터 철학과 사상과 종교에 대한 나의 여정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명심보감이나 사서삼경을 자주 이야기 해주곤 했었는데 그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가장 먼저 사서삼경을 펼쳐 들었다. 사서삼경을 읽고서 왜 그리 아버지께서 사서삼경을 틈나실 때마다 우리 삼 형제에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사서삼경에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모든 관계에 대한 도리들을 담고 있었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어떤 인생보다도 훌륭하고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훌륭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답은 아니었기에 그 이후로도 장자와 노자, 심지어는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했던 곳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나의 대학시절의 전반기를 정처 없이 헤매며 흘려보내고 대학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친한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한 권의 책을 건네받았고 마침내 나의 방황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버지였다. 순간 그동안의 나의 삶, 나의 방황들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함으로 내 온몸을 감싸 안았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내가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푯대가 생겼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한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을 위해서 나는 그분들이 나로 인해 기뻐하고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순한 아이로 자랐던 것처럼 내 스스로는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이뤄야겠다는 욕심이나 욕망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기뻐하시는 자식이 되어야겠다는 나의 다짐은 특별한 재능을 갖지 않은 내가 노력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뤄 나가야 할 목표를 갖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본인께서 사기업에 다니셨기에 아들들이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다니시길 원하셨다. 나는 그 어떤 다른 곳도 염두에 두지 않고 우리나라의 대표 공기업을 목표로 공부했고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취업을 했다. 나의 합격 소식을 듣던 날 아버지는 본인의 꿈을 이룬 것 마냥 기뻐하셨고 그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공기업에 들어온 후로도 나는 나로 인해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그런 결과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아버지는 매번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친지들에게까지 자랑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기뻐하심이 많은 역경 속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버지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