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ro Oct 22. 2021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논품픽] 회사 알레르기지만 괜찮아 7화

“아버지, 이제 제가 효도할게요.”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너 또 무슨 사고 쳤냐?

계속 속만 썩이다가 이제 취직하고 정신 좀 차렸나 했더니.”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가 저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는지, 

왜 그렇게 짜증을 많이 내셨는지, 

왜 그렇게 자주 한숨을 쉬셨는지,

왜 그렇게 늘 피곤하시고 무기력하셨는지, 

왜 그렇게 넉이 나간 듯 무표정한 얼굴이셨는지, 

남 부럽지 않게 사는데도, 왜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 좀 했다고 이제 정말 철이 드는 모양이구나.”


“네... 그런데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회사생활을 40년이나 하셨어요?

저는 1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벌써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은 철없던 자식도 부모님을 이해하는 효자로 만들어 줍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사용하시던 책상을 썼다. 그 책상을 물려받아 사용하다 보니 책상 서랍 바닥에 이런저런 낙서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자유롭게 적어 놓으신 듯했다. 시도 있었고 수필 같은 글도 있었고 그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낙서들과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의아해했었다.


아버지는 내가 부족한 것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지만, 무표정인 얼굴에 짜증 섞인 말투로 말씀하실 때가 많으셨다. 술을 좋아하시진 않았지만 한번 드시면 과음을 하실 때가 많으셨고, 술이 취하시면 늘 한숨을 쉬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우리 가족은 늘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혼자 늘 뭔가에 짓눌려있는 듯이 힘들어 보이셨고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퇴근 후 넉이 나간 듯 무표정한 얼굴로 TV만 보곤 한다. 아무런 의욕이 없어 딸아이가 말을 걸어와도 무심하게 짧은 답만 하게 된다. 별일 아닌 일로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그 일로 인해 나도 가족들도 불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도 가족들을 위해 회사 생활을 하시면서 이런 기분이셨겠구나... 오랜 시간 동안 회사 생활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버지도 회사 알레르기로 고생하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현재에 비해 열악한 근무 환경과 조직 문화 속에서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 일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회사 알레르기는 극복의 대상이었을 테고, 부딪쳐 이겨내시려고 애쓰셨을 것이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손녀딸에게 알레르기가 있어도 계속 조금씩 먹으면서 적응하고 이겨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니 말이다.


나에게 늘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근검절약해서 부자가 되어야 나이 들어 고생 안 한다고 강조하시던 말씀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고리타분한 잔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말씀은 요즘 유행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과 파이어(FIRE)족*이 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없던 아들은 커가면서 세상의 쓴맛을 경험하고서야, 어렵고 힘든 나날을 보내신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 가르침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고 있다. 


젊은 시절 책상 서랍에 글과 시와 그림을 남길 만큼 감성적인 청년이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일하시는 동안 부드럽던 마음에는 굳은살이 박히고,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영혼은 냉혹한 현실에 속박된 채 평생을 보내셨다.

4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가족들을 위해 출근하셨던 아버지께,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 노고와 희생에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논품픽] 회사 알레르기

*파이어(FIRE)족 : Financial Independence & Retire Early를 줄인 말로 경제적 자립을 통해 조기 은퇴를 하는 사람들 

Photo by David Sinclair on Unsplash



이전 06화 창업의 원동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