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순종적인 아이가 어느 날 아침 오늘은 학교를 안 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 왜?"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반에서 친한 친구가 없어서 혼자 있는 것이 싫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 난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야. 지금부터 연습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싫어서 아이들이랑 안 노는 거잖아...."
말을 하는 내내 우리 아이가 왕따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작은 이탈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내 시선을 외면하고 "저 정말 학교 안 가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나는 " 응 안 돼." 짧게 대답했다. 아이는 말없이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그날 저녁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말없이 방에 들어갔다. 난 앉지 않고 아이를 쪼르르 따라 들어가서 오늘 어땠는지 물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나가달라고 했다. 난 궁금해서 그런다고 왜 그러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 순간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난 그럭저럭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학교생활, 친구들을 간간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에 아이에게 소리쳤다.
"울지 말고 말을 해. 네가 우니까 내가 속상하잖아"
" 그러니까 나가라고요, 혼자 있고 싶다고요."
아이에게 떠밀리듯 방을 나왔다. 내가 나오자 아이는 방문을 걸어 잠갔다. 눈물이 났다. 아이의 상황이 걱정되었다. 그러다 걱정하는 엄마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그날 저녁도 먹지 않고 아이는 잤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생기는 일들로 인해 거의 매일 늦게 퇴근해 집에 온다. 그래서 아이들 저녁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다. 모처럼 아침 일도 신경 쓰이고 해서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챙겨 주려 했는데... 아이와 대화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고 모든 게 답답한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다행히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인사도 없이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고 나는 출근을 했다.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힘이 없어 보였다. 일단 학교에 가면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인 아이는 사춘기와 공부 등의 스트레스로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한주가 지나갔다. 그리고 일요일 아이는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렁그렁하던 눈에 눈물을 닦고 아이는 말을 했다.
"3학년이 되어서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네가 친구한테 먼저 다가가야지."
"친해지려고 처음에는 노력했는데 친한 친구들 사이에 끼기가 힘들어요. 친한 애들끼리 놀고 나랑은 같이 안 다녀요. 다른 수업 시간은 괜찮은데 체육이 든 날은 정말 싫어요. 체육은 서로 짝지어서 수업을 하거든요. 난 매일 짝이 없어요."
"....."
"그래서 체육이 든 날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온라인 수업을 듣고 싶어요."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매몰차게 그래도 학교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런 상황도 극복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의 고민이 느껴져서 온라인 수업을 받도록 했다. 코로나19나 한참이던 기간이라 다행이었다.
그렇게 2주 정도를 체육이 있는 날을 학교를 가지 않았고 2학기 마지막 시험을 치고 중학교 시절이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었고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받아도 친구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중3 시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해 그런 행동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최근 "더 글로리'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는 중3 시절 학교에 가기 정말 싫어서 계단에서 뛰어내려 다쳐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계단에 서서 뛰려고 하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친구가 어느 날 목발을 짚고 등교를 했다고 했다. 목발을 짚고 등교한 친구를 보면서 혹시 저 친구도..... 나처럼 그런 생각으로 실행에 옮긴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미안했다. 얼마나 그 상황이 힘들다고 느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 못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극적이 이야기들. 누구나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들 그런 것으로는 당연히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런 직접적인 가해를 받지 않더라도 사춘기의 예민한 아이들은 작은 말, 행동에도 상처 입는다.
누군가의 의미 없는 시선에도, 말에도 상처 입는다. 특히 또래의 아이들에게 받는 상처는 더 심할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어른보다 또래의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위로받는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한가.
난 나의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아이가 용기 내어 말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공감해 주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식 잘 되라고 자신의 생각으로 아이를 억압하고 판단한다.
누구나 다 힘들다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일단 공부를 잘하면 다른 일들은 저절로 해결된다고
이렇게 아이들을 다그친다.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예민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믿고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아이들이 자라는 매 순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 부모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바쁘다고 누구나 다 그렇다고 무시해 버리지 말고 들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해결해 주지 못해도 들어만 주어도 용기를 얻을 것이다.
언제나 난 너의 편이야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