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AI 기술에 대한 찬반을 말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돌아보는 글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만들어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일지 모른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 씨의 웹툰은 AI의 진짜 순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사례는 오래도록 말해지지 못했던 개인의 서사를 세상 밖에 꺼내는 데 AI가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우원 씨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대중문화’의 형식을 택했다.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대중이 만들고 소비하는 문화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웹툰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전달했다.
이는 숏폼과 비주얼 콘텐츠에 익숙한 시대 흐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밀도를 포기하지 않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폭력으로 얼룩진 그의 불우한 가족사가 웹툰 속에서 혹독하면서도 처절하게 펼쳐지는데, 귀여운 그림체 속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게 보면 웹툰이라는 장르는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끝까지 닿게 하기 위해 선택된 형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증언보다 서사가, 고발보다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보다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삶에 더 깊이 매료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안의 상처를 반복해서 마주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 가능한 형태로 다듬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 과정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기에, 오롯이 홀로 감내하는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고통을 견디고 의미를 선택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AI는 그 과정을 돕는 보조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을 이야기를 대중 친화적인 웹툰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족으로 인해 오랜 시간 감당해왔을 죄의식과 무게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선택이다. 그럼에도 침묵 대신 고백을 택한 그의 선택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물림될 수 있는 폭력과 방관 대신 침묵을 끊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선택이 곧바로 모든 것을 바로잡아주진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침묵이 이어질 때보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 말해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야말로- 견고했던 기존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것을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간 세상의 어두운 면을 고발해온 영화와 드라마가 사회적 파급력을 가진 이유도 이와 같은 속성을 띠고 있으니까.
개인의 고통을 서사로 풀어낼 때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바라봐야 할 현실이 된다. 전씨의 웹툰도 이 흐름 위에 놓여있다. 다만 당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AI 웹툰이라는 최첨단의 장르를 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는 것이다.
AI의 진짜 순기능은 세상을 더 빠르게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끝내 자기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람이 더욱 사람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게 AI가 해야할 임무일 것이다. 그리고 전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웹툰으로, 또 영상 형태로 옮겨져 더 많은 이들에게 닿게 되는 순간, 그 결과물이 누군가의 생각을 흔들고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 때 AI는 비로소 기술을 넘어 하나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