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용서받았대요”라는 말이 가장 잔인한 이유

조진웅 사태에서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by 소서

조진웅 사태를 보다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저지른 범죄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주홍글씨를 지고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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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사실 처음 등장한 것도,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실제 현실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도 이 물음을 반복해왔으니까. '처벌 이후의 삶'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죄를 지은 사람을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겠다.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워졌다고 착각한 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다. 세상에는 최악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끝내 어긋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난했고, 폭력에 노출됐고, 선택지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범죄자가 되지 않았고, 누군가는 끝내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최소한 평생에 걸쳐 반성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혹자는 이들이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미 죗값을 치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삶이 곧바로 ‘리셋’되는 것은 아니다. 처벌이 끝났다고 해서, 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처벌 이후의 삶’이란 과거를 지워버리는 삶이 아니라, 그 과거를 끌어안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감옥 밖의 삶에서도 계속해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꾸준하게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봉사하고 반성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낮추며 살아가는 태도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용서 이전에 스스로를 용서했다고 말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반성했고, 벌도 받았다”는 말이 자기 위안이나 면죄부처럼 쓰이는 순간, 그 말은 또 한 번 피해자에게 상처가 된다. 용서는 오직 피해자의 권한이지, 가해자가 선언할 수 있는 자격이 아니다.


2.jpg 영화 '밀양' 스틸컷


영화 <밀양>에서 가해자가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유독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하냐”라고 절규하는 유가족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말은 신 앞에서는 성립할지 몰라도, 피해자에게는 끝내 닿지 않아서다.


그런데 사회는 종종 그 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반성의 서사가 등장하면 안도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제 됐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죄를 짓지 않고 버텨온 사람들, 끝내 선을 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그럼 무엇이 되는 걸까.


나는 범죄자가 평생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고개를 너무 일찍 들지 않았으면 한다. 주홍글씨를 지운 척하며 사는 대신, 그 글씨를 인식한 채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최소한의 책임일 테니까.


처벌은 끝날 수 있어도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그 불편한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며 겸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그들에게 비로소 허락될 수 있는 ‘다시 살아갈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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