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은 한 시대의 기록이 된다
배달통을 든 채 서울의 빌딩 숲을 헤매고(<바람 불어 좋은 날>), 자유를 갈망하던(<고래사냥>) 혈기왕성한 스크린 속 청년은 이제 없다. 그 앳된 얼굴의 청년은 고단했던 투병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일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안성기의 부고를 접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보는 일은 무상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없는 얼굴'들이 그곳에 생생하게 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곧 깊은 경외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생애 앞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대중문화가 남기는 의미를 다시금 묻게 되어서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나비가 꽃에 잠시 안착했다가 떠나는 과정과 같다. 그 머무름은 찰나에 불과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날아올라야 하는 운명이다. 배우 안성기의 삶 또한 그러했다. 1950년대 전후 시대의 아이에서 80년대 고뇌하는 청춘으로, 90년대의 세속적인 중년을 지나 노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이라는 '꽃'에 치열하게 내려앉았다.
이제 나비는 꽃을 떠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작품 속 캐릭터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 속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의미 있다. 그 순간 순간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된다는 것을 그는 무수한 필모그래피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풋풋함은 풋풋한 대로, 주름은 주름진 대로 아름다웠던 그의 생애.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걸어가는 한 인간의 정직한 보폭이었다.
인생은 유한하고 육체는 스러진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안성기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보면 볼수록 허무해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안성기라는 배우는 그 허무와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보여주었다. 바로 '영화'다.
한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낸 삶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 시대의 기록'으로 승화된다. 50년대의 폐허, 80년대의 억압, 90년대의 욕망, 그리고 그 이후까지- 그는 '영화'를 통해 그 시절 분위기를 온몸으로 표현했고 덕분에 후대는 책으로만 배울 뻔한 시대 감성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은 한 시대의 기록이 된다. 그렇게 보면 안성기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긴 유서이자, 우리가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역사책에 가까울 것이다. 배우는 떠났어도 그가 남긴 작품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