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야반도주'하듯 집을 뛰쳐나온 밤

2021년, 가장 비장하고 숭고했던 나의 선택

by 소서

*오늘은 저의 에세이 <그 시절의 이름들>의 한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


"아무 일 없이 사는 게.. 순탄하게 사는 게 참 어려워." 카페에서 업무를 하던 중,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온 대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낯선 타인들의 푸념이었으나 그 무게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왜일까. 우리는 늘 평온을 바라는데 왜 삶은 단 한 번도 예고된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 본연의 정신이 그 '순탄함'을 거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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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전도 그래프가 일직선이면 죽음을 의미하듯, 살아있는 존재는 본능적으로 파동을, 삶의 궤적을 바꿀 변곡점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닐까.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진 탓에 세상이 보내는 미세한 진동조차 지진처럼 감지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삶에서 '요동치는' 순간은 살아있기에 겪어야 할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변화가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고난이나, 감당하기 벅찬 파란만장한 삶이라는 가혹한 이름으로 들이닥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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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다. 2021년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업무와 웹소설 연재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결국 그해 7월, 도망치듯 사표를 던졌고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다. 바다를 보며 글만 썼던 한 달간의 자유, 그것은 달콤했으나 역설적으로 현실로 복귀한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8월에는 연인과 이별했고, 상처를 안고 돌아온 집은 여전히 매일 고성이 오가는 전쟁터였다.


자유의 맛을 이미 알아버린 탓인지, 더는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안팎으로 기댈 곳 하나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 집을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부모님은 흉흉한 세상이라며, 전세 사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를 앞세워 나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직감했다. 지금 이 안전해 보이는 공간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나를 죽이는 일임을. 나는 부모님의 거센 반발을 뒤로하고, 야반도주하듯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왔다. 곧이어 울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들이 이어졌고 가족과 의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홀로 감당해야 할 생계의 무게가 나를 덮쳤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도무지 긍정할 수 없는 미래에 벌벌 떨면서도 기어코 내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것은 내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발휘한 비장한 의지였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2026년의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선택은 옳았다고. 상처는 딱지가 앉아 아물었고,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가족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홀로 서기를 선택했기에, 비로소 나라는 세계의 크기를 인식하고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에 닿은 것이다.


에세이 <그 시절의 이름들>은 내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면서 당신의 선택을 옹호하는 이야기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내려온 당신은 어떤 태도로 당신의 세계를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록 지금은 비극일지라도, 당신의 선택은 비장할 것이며, 그 끝은 반드시 숭고할 것이다. 지난 2021년의 내가 그랬듯이.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