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망치는 두 가지 독: 인정 욕구와 오만

책 <그 시절의 이름들>을 쓰며 배운 창작의 태도

by 소서

글을 쓸 때 창작자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독'이 2가지 있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 다시 말해 인정 욕구와 타인을 계몽하겠다는 오만함이다. '글쓰기'가 수단이 될 때 작가는 조급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무언가 그럴싸한 것을 꾸며내려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필연적으로 작위적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문장은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다.


계몽에 대한 충동 역시 위험하다. 내 글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글을 느끼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독자는 귀신같다. 작가가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지 아니면 우위에 서서 내려다보는지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존중이 없는 글에 마음을 열 독자는 없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글쓰기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쓰는 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것. 돈이나 명예, 타인의 인정 같은 결과에 집착하는 순간 글쓰기는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짐이 된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제풀에 지쳐 금세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내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은 외부의 평가나 보상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쓸 수 있다. 글 앞에서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으로 서는 것. 그 무구한 즐거움만이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쓰게 하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글쓰기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다. 언제 빛을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흔이 넘어 데뷔해 한국 문학의 거목이 된 박완서 작가가 그랬고 평생을 무명으로 살다 노년에 이르러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나태주 시인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게 보면 창작의 세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일 테다.



최근 출간한 나의 에세이 <그 시절의 이름들> 또한 그런 마음으로 쓰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잔뜩 힘을 준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써 내려간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나의 그 내밀한 고백이 지금 타인의 마음에 닿고 있다.


이 세상에는 쓰여야만 비로소 읽힐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가슴속에 맺힌 그 이야기들도 그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