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두아>로 보는 우리 시대의 욕망

드라마 <레이디 두아>가 던지는 질문, 당신의 믿음은 안녕하십니까.

by 소서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디테일이 모여 신용이 되고, 신용이 쌓여 신뢰가 되며,
신뢰가 커지면 신앙이 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속 주인공 '사라 킴'의 대사는 현대 자본주의의 정곡을 찌른다. 가짜일지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여자와 그 욕망의 꼬리를 쫓는 남자 '무경'의 추격전은 섬뜩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이 극은 통쾌한 사이다물이라기보다, 인간의 허황된 심리와 허영심을 정교하게 겨냥한 거대한 장르물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20년 전, 이와 똑같은 현실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바로 2006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빈센트 앤 코' 사건이다.


드라마와 현실이 만나는 지점

홀연히 나타나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라킴, 그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형사 무경, 그리고 각자의 이유로 사라킴의 인생에 얽힌 사람들. 알 수 없는 진심과 정교하게 짜여.jpg


드라마 속 사라 킴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홍보하며 "아무나 살 수 없는 제품"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선택된 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폐쇄적인 마케팅은 상류 사회의 선민의식을 정확히 관통한다. 이는 2006년 '빈센트 앤 코' 사건의 수법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당시 빈센트 앤 코 역시 유럽 왕실이 보증하는 100년 전통의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운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실체는 조악했다.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한 제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과 자산가들이 이 시계에 열광한 이유는 사라 킴의 말대로 정교하게 설계된 가짜 '디테일'과 '희소성'이 신용이 되었고 그것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신앙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퉁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권력이니까

홀연히 나타나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라킴, 그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형사 무경, 그리고 각자의 이유로 사라킴의 인생에 얽힌 사람들. 알 수 없는 진심과 정교하게 짜여 (1).jpg


극 중 위조 기술자들이 만들어내는 '짝퉁'은 아이러니하게도 진품보다 마감이 훌륭하다. 이 디테일 앞에서 드라마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진다.


"고도로 발달한 짝퉁은 진품을 뛰어넘는 법이죠. 진퉁의 목표는 완벽이 아니니까."

이 대사는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짜'로 대변되는 기득권은 태생부터 권위를 가진다. 빈센트 앤 코가 '유럽 왕실'이라는 가짜 족보를 달았을 때, 사람들은 시계의 오차 따위는 보지 않았다. 권력 자체가 품질보증서이기 때문이다.


이는 극 중 사라 킴이 신분 세탁 후 논문을 대필했다고 고백하자, 오히려 "솔직해서 매력 있다"는 반응을 불러낸 장면과 겹쳐진다. 이렇듯 진짜의 권위를 쥔 이들의 결함은 소탈함이나 인간미로 둔갑한다.


하지만 가짜는 단 한 올의 실밥조차 '근본 없음'의 증거가 된다. 불완전할 권리조차 없는 '비주류'는 살아남기 위해 비명에 가까운 완벽함을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수행을 이어간다.


어디까지가 가짜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드라마는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만약 우리가 숭배했던 것이 사실은 정교한 가짜였다면, 하지만 그 가짜가 내게 완벽한 만족감을 줬다면 우리는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레이디 두아>는 명품 위조극의 외피를 썼지만, 실상은 우리가 맹신하는 '진실'의 실체를 돌아보게 한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 또한, 시청자들이 극 중 인물들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현대인이 지닌 욕망의 본질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허황된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이전 04화[공지] 매체 칼럼 제안 및 유튜브 준비를 위한 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