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은 시작일 뿐 2

동아시아 재편의 한복판, 한국은 전략 설계자가 될 수 있을까?

by 소선

한미일 간의 관세 갈등은 일시적 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미국의 전략적 셈법은 관세를 무기로 쓰되, 그 이면에는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짜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깔려 있었다. 동맹을 강화하는 척하면서도, 자국의 부담은 줄이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방식. 그 방식에 한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길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줄곧 미국의 절대적 우방국이었다. 안보와 통상 정책 전반에서 미국과의 정렬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고, 최근의 관세 갈등 국면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7월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공식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내부 조정과 미측 설득이라는 간접 방식만을 택했다. 이는 대외 갈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동맹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확보하려는 일본 특유의 실용주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반면 한국은 언론과 외교 라인 모두에서 눈에 띄는 공식 발언을 자제하고 있으며, 사실상 '침묵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관세 문제를 포함한 경제·안보 연계 구조를 전면 재설계하려는 물밑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아파치 헬기 도입 철회, 방산 수출 확대, 전략품목 자립화,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논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지금 실익 중심의 전략적 변환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아파치 헬기 추가 도입을 철회하고, 드론 및 무인 전력 체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결정은 단순한 무기 교체가 아니다. 이는 전장 환경의 변화에 맞춰 작전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신호이며, 미국산 고가 무기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적 운용능력과 비용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동시에 국산 무기체계(KF-21, K2, K9, LAH 등)의 품질과 수출 실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한국은 단순 소비국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자로 도약하고 있다. 여기에 훈련 규모의 조정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기존의 한미동맹 구조 역시 재정의되고 있다. '동맹을 유지하되, 구조는 바꾼다'는 원칙 아래,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자주국방"이라는 키워드가 명확히 자리잡고 있다.


훈련을 줄인다는 건 단순히 국방비를 절감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북한에게 보내는 섬세한 정치적 신호다.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의 도발 명분으로 활용되어 왔던 과거를 고려하면, 훈련 강도를 조절하는 움직임은 긴장 완화의 여지를 남긴다. 더 나아가, 이는 한국이 이제 전통적인 군사 억제 외에도 외교적 해석과 전략적 설계를 통해 긴장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훈련 축소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지만, 규모 조정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정책 방향의 변화를 예고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칫 약화로 비춰질 수 있으나, 실상은 역으로 한국이 안보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방 자립과 방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협상의 지렛대를 강화한 한국은, 관세 갈등이라는 경제적 충돌 국면에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순한 무역 피해 국가가 아닌 협상 판을 뒤흔드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동안, 한국은 미국산 무기 구매를 축소하고 K방산 중심의 독자 전략을 강화함으로써 ‘안보 의존’을 ‘경제 자산’으로 전환하는 국면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자국 무기체계의 해외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관세 충돌의 피해국이 아니라 자율적 재편 국가, 더 나아가 신흥 경제·안보 설계자로 이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방어의 논리를 넘어서, 경제-안보 연계 구조 속에서 관세 전쟁마저 주도할 수 있는 입지로 도약 중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국방을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국방을 활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주한미군은 여전히 주둔하지만, 그 존재의 의미는 조정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지를 제공하지만, 더 이상 무조건적인 동맹 비용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무기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K방산은 이제 선택이 아닌 전략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다음 질문을 향한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은 존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그 시도는 철저히 미국 주도의 이벤트에 가까웠고, 실질적 진전보다는 정치적 상징에 머물렀다. 지금은 다르다. 국방 자립과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한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협력은 외세의 조건 없이, 우리 손으로 판을 짜고 이끌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이전에는 허락을 구해야 했다면, 이제는 제안을 건넬 수 있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부의 행정적 접근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과제다. 그것은 단순한 남북문제의 테이블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구조를 다시 그리려는 전략적 시도다.


이제 국방이 자리를 잡았다면, 우리는 안보 불균형에서 벗어나 '평화'라는 개념을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일본은 여전히 미국과의 절대동맹 프레임에 묶여 자율적 전략 선택에 제약이 크고, 중국은 내부 통제 강화와 경기침체 속에 외교적 기동력이 떨어져 있다. 북한은 수세적 구도에서 대외 명분 확보가 필요한 시기다. 이 셋 모두가 단기적으로는 자신들의 전략을 외부로 확장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역내 질서를 논의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자주국방 기반 위에 방산 수출국으로 떠오른 위상, 미중 사이를 넘나드는 외교적 유연성, 그리고 군사력과 협상력을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국가. 이 모든 조건은 한국이 '조용한 설계자'가 될 수 있는 근거다.


우리는 지금, 단지 '한반도의 안정'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재구성'을 꿈꾸고 있다. 겉으로는 미국과 발을 맞추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국만의 판을 그리고 있다. 이 정권이 조화를 말하면서도 실익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설계자로서의 정합성과 계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무서운 이유이자, 지금 우리가 갖는 전략적 고지의 실체다.


관세 전쟁은 시작일 뿐이었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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