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식탁 한 켠에 노트북을 펼쳤다. 집은 조용했고,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 시간이면 언제나 마음이 복잡해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과, 이대로 흘러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겹친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쓴다. 누군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했다. 잊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어딘가에 나라는 사람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홀로 시집을 만들고, 무작정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삶에 ‘선택’이라는 감각이 살아 있었다.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아주 작지만 확실한 위로가 됐다.
물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직장도 잘 다니고 있는데 왜 굳이?” 그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꺼내고 싶어서요.”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확신이 없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꿈이었을까. 아니면 책임과 현실이 버거워서 잠시 숨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은 늘 글과 함께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글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됐다. 조용히 쌓아간 문장들, 누구도 모르게 밤의 틈에서 써내려간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나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나는, 회사에서의 나와 달랐다. 더 솔직했고, 더 정직했고, 무엇보다도 나를 속이지 않았다.
브런치는 내게 ‘작가’라는 이름을 가능하게 해줬다. 처음엔 그 단어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빠이고, 누군가의 동료지만,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를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삶에 또 다른 숨을 불어넣는다.
아주 작은 글이었지만, 그 글은 나를 다시 나로 만들어주었다.
이젠 알 것 같다. 잊히지 않기 위해 시작한 글이, 결국은 나를 기억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당신은 오늘, 당신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