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유 투

by 승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술이 약속된 만남이라 차를 놓고 가서 오랜만에 광역버스를 찾았다.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지. 봄에 대해 적어보았던 지난 나의 글을 생각했다.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있었다. 작은 창 하나를 열어두고 생각했었다. 봄은 참 멋진 것 같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모인 시끌벅적한 파티에 아주 멋진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누군가처럼.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등장같이. 봄을 그렇게 실감했다.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아 어울리는 노래를 공들여 찾았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덜어낸 외투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걷는 봄의 어떤 날을. 목적 없이 걷던 골목을. 날씨만큼 따뜻한 초콜릿 한 조각을. 누구나 알 법한 3월의 달콤 씁쓸한 어떤 산책을. 눈을 감고 겪어보지 않았지만 겪어 볼 수 있는 어떤 봄날을 그렸었다.


부드러운 바람이었지만 얇은 옷가지에 몸을 잠시 움츠렸다. 버스는 아직이었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웠던 것도 같다. 울리는 알람을 보고 재미있는 방 하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순식간에 습관이 되어버린 어플 하나를 켰다. 음정, 박자, 하나도 맞지 않는 어떤 사람들의 노래들을 들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같이 불러봐요.>라는 방 제목을 읽지 않았으면 어떤 곡인지도 몰랐을 법한 그런 우당탕한 목소리들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방을 나와 당연한 듯이 '브로콜리 너마저'를 검색했다. 들썩거리는 발과 함께 노래 몇 곡을 감상하니 버스가 눈 앞에 있었다.


재미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충만하게 즐거웠던 적이 최근에 있었나, 돌이켜봤다. 잘 생각나지 않았다. 퇴근길 꽉 막힌 도로로 버스는 쉽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달짝지근한 멜로디를 들으며 그렇게 창밖을 한참 보았다. 그리곤 찾아왔다. 숨죽여 기다리던 기억이 나에게 왔다. 번뜩 깨달은 어떤 사실은 또 한 번 나를 간지럽혔는데, 처음 겪어보는 멋쩍은 간지러움이었다. 없던 추억도 만들어주는 이 노래들을 들으며 생각난 기억들이 더 이상 나의 학창 시절이 아니라는 점. 교복을 입은 나도 아니었고, 서툰 설렘이 가득했던 대학생활도 아니었다. 끌려오듯 시작한 타지 생활을 시작하며 마주한 시간들이었다. 손을 마주 잡고 걷던 어두컴컴한 골목길, 또각 구두를 신고 비틀대던 합정역, 만취해서 비틀대던 녹사평의 이름 모를 언덕, 투닥거리던 1500번 버스의 한 구석, 씰룩대며 열심히 췄던 어딘가 아쉬운 춤. 그런 기억들이 버스가 달리는 도로 밑에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막힌 도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운전대는 다른 이가 잡고 있으니 나는 그 기억들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삼가고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생활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주 울컥 무엇인가 차오르곤 했다. 가득 채운 물컵처럼 감정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찰박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커다란 감정이 쿵 하고 등장하길 바랬다. 어떤 것은 넘쳐흐르고 어떤 것은 비워질 내 마음의 그릇을 기다렸지만 쉽지 않았다. 불편한 평온이 집 안에 가득했고, 곳곳에 들러붙은 파랗고 빨간 기억에 어떤 날은 동요하고 어떤 날은 주저앉았다. 물컹한 감정이 가득한 우리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실린 나는 간절했다. 도로 위의 반짝이는 이것들을 몽땅 끌고 가서 집 안에 왕창 쌓아두고 싶었다. 침대 위에서 생각하는 덕수궁의 은행나무, 의자에 앉아 마주하는 망원동의 잠봉뵈르, 러그 위에 함께 누운 우삼겹 덮밥을 아주 간절히 바랬다.


막무가내로 쏟아지던 칼바람에 꽁꽁 얼어 있던 가슴 한쪽이 은근해지는 오늘의 봄에 나는 결국 이런 글을 적는다. 촌스럽고 서툴렀던 실패 가득한 나의 지난 시간을 토해내듯, 일상의 낭만을 찾아 헤매던 또 다른 지난 시간을 위로하듯 그렇게 글을 적는다. 재생하고 있는 플레이리스트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고ㅡ 나는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넘겨짚는다. 훗날의 '브로콜리 너마저'에는 오늘의 내가 있을 거라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