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희생자

by 승아



—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한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니까,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그 결과 우리는 상대의 본질에 어느 정도까지 다가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잘 안다고 여기는 상대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는것일까.


하루키의 문장이다. 태엽감는 새 1권에 나왔던 문장이지, 아마? 가능할까? 나는 곱씹어 볼수록 이 질문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짜여진 이 질문에 너는 뭐라고 대답할까?


1. 이해는 어떤 범주에서 가능할까?

먼저 확실히 해둬야 한다.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확실한 정의가 필요하다. 무엇일까, 너를 이해한다는 표현, 근사한만큼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사람마다 제 각각이겠지만 내 경우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말들 중 하나이다.

머리로써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성적으로 이해가는 상황들도 있겠으나 사람은 머리로 이해하는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행동하는 것은 너이고 이해하는 것은 나이므로 해소되지 않는 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이해를 가장한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은, 나는 너를 충분히 이해하고 싶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현실이 아닌 바람이다.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표현인 것이다.



2. 어느 시점에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할까?

좋아하는 예능에서 한 뇌과학자의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사람을 언제 변했다고 느낄까? 외모가 변했을 때? 행동이 평소와 다를 때? 실험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덕관념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변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평소와 같지 않은 도덕 관념이 비춰질 때, 그 사람이 새롭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의 영역에도 ‘충분하다’ 라고 생각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충분하다는 표현 자체는 이해라는 표현과 맞지 않아 보인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과연 충분해질 수 있는지, 나의 경우 충분하다는 것이 과연 상대에게도 충분한 것인지, 상대가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우 과연 내가 알 수 있을지. 아마 ‘충분하다’는 것은 ‘마음만큼’이라는 것의 과장된 표현 아닐까. 내가 너를 알고 싶은 마음 만큼, 내가 너를 위하는 마음 만큼,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 만큼, 나는 너를 이해해 —



3. 자신의 본질을 자신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어려운 부분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생각해볼 때 나는 나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나만 알고있는 나의 모습은 있다. 정확하게 명명하지 못하지만 나만 느끼는 미묘한 나의 모습을. 나는 비슷한 모양을 가진 많은 부분과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진 작은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비중이 높은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내가 아닌 가까운 타인들이 알고 있을 때가 많으나, 전혀 다른 모양의 부분은 오직 나만 알고 있다.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성질. 내가 나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무늬. 특수성을 알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알아야 하듯, 나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먼저이다. 이러한 이유로 적어도 나의 경우는 나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믿을 뿐이다. 이 점은 나만 가진 부분일 것이라고. 그렇게 가치를 두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믿고 싶은 그 성질에.



알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각자 다 다르게 생겼지만 그 모두를 인간이라 지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비슷하지만 절대로 같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이라, 나는 영원히 나의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도, 외면 당할 수도 없다. 이해받지 못할 내 모습, 외면 당할 내 모습을 알고 있는 나이기에 살아있는 동안의 괴로움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이해 받을 수 있는, 외면 받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부분을 나는 믿어야 한다. 그렇게 믿는다면 괜찮을 수 있다. 세상 속에 혼자인 것 같은 고독이 찾아와도 그럴 수 있지 - 넘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