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슈 칼럼

재난이후 문학의 명제

-문예비평 칼럼

by 니르바나

계간시원 권두칼럼 (2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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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문학의 命題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얼마 전 AFP 연합뉴스에 의미심장한 사진이 소개되었다. 이집트의 기자지역 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에 레이저로 비춘 글귀가 인상적이다, “집에 머물라, 안전히 머물라,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신종 코로나 사태에 인류의 안전을 기원하는 메시지다.

기원전 2500년대, 파라오 쿠푸 시절에 세운 피라미드와 현대문명의 상징인 레이저이미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가슴이 서늘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출입이 금지된 피라미드 부근에는 외로운 들개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 영락없이 인류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번 신종 코로나의 급속한 전파로 지구촌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오대양 육대주에 이르는 공간의 확장성과 그 속도에 문명은 무릎을 꿇었다. 미국 유럽 등 문명국일수록 희생은 더 크고 참혹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학교가 일터가, 공장이 멈추자 거짓말처럼 지구의 하늘이 한층 맑고 깨끗해졌다고 한다. 재난이 가져온 역설(逆說)이다.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순기능을 보여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재난 속의 밀사(密使)들이 뭔가 메시지를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그 숨은 메시지를 누가 읽어낼 것인가? 과학자 종교인 정치가가 유리할까?


과학자는 재난(전염병)을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보고 새로운 백신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일부 종교인은 공포를 종말론으로 포장하여 혹세무민하기도 한다. 정치가는 임기 중에 일어난 일에만 책임을 지려한다. 이에 비해 문학은 보편적 인류애와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문학은 탁월한 상상력과 감수성 미래예측 능력의, 암호를 푸는 열쇠를 가졌다. 인류의 역사는 재난과 맞서는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결과는 참혹한 희생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재난 속 밀사들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갖가지 재난 중에서도 전염병과 관련하여 문학 속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Decameron》을 주요작품으로 꼽는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인간의 탐욕, 운명을 다룬 작품, 당시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가량(7.500에서 2억명 추산)이 희생되는 비극을 낳았다. 때문에 사회적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문학의 주요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교향시로는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Dance of Death>가 충격파와 함께 지대한 반향을 불러 일어켰다. 원문은 장 라오르(필명 앙리 카잘리스)의 <착각>(l'Illusion)에 수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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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 지그, 지그,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한 밤중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로 시작되는, 깜깜한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괴한 해골 춤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를 묘사한다. 욕망을 추구하는 삶의 허무와 생명의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그 외에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헤르만 해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전염병으로 죽음이 일상화되고 허무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을 위무했다. 그리고 헛된 탐욕에 대한 경계와 문명에 대한 묵시적 경고도 담겨있다.

하지만 재난을 다룬 창작이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거기다 한국 문단의 경우 일부 시도기 있었지만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미개척의 분야로 남겨져 있다.


재난 속에 던져지는 밀사의 메시지는 난해하지만 불가해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미 분명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요약하면, ‘멈춰라’ Stop, ‘돌아보라’ Review, 그리고 ‘선택하라’ Choose의 정지, 성찰, 전환의 세 가지 경고 시그널이다.

발신자는 자연 신 지구로 신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수신자는 모든 인류로 동일하다. 미래 생태학자들은 지구문명 자체의 생명력을 인정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그물로 이어져 상호의존관계로 공생 한다. 물론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류의 미래는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본다. 지금 질주하는 과학문명의 속도를 더욱 가속하거나 감속할 것인가, 과학문명 위주의 패러다임을 인본주의나 생태주의로 바꿀 것인가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인가가 선택의 관건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모든 것이 멈추는 걸 경험했다. 원시로 되돌아간 것이다. 문명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시간의 단축이고 공간의 확장인 셈이다.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데 인류는 모든 에너지를 투입했다. 결과는 ‘멈추라‘는 경고를 받은 것 뿐이다. 멈추고 나니 거짓말처럼 지구의 생명성이 되살아난다. 공기가 깨끗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재난은 지구문명 스스로 자기조절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인류의 미래를 지속 가능한 연착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선택을 해야하는 엄중한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문학도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다 거시적(巨視的) 안목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작품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는,

그런 노력이 오늘 우리 문학의 당면한 명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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