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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l 17. 2020

탐진강 시편, 그 맑은 영혼의 시학

-양치중 제3 시집 서평


/서평// 양치중 제3 시집                 

                                          /도서출판 한강, 136 쪽  출판사/ 02 735 4257


                     

탐진강 시편, 그 맑은 영혼의 詩學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남도의 청정(淸淨)향리 강진에 뿌리를 내린, 해운(海雲) 양치중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희망의 푸른 기억 》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고향 모티브는 동서고금의 문학적 근원이 되는 뿌리였다. 물고기가 물을 모태로 살아가듯, 사람은 고향을 모태로 태어난다. 삶의 근원이자 존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고향의 자연과 문학의 융합은 정서 순화, 건강한 상상력, 인간성 회복과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명제(命題)에 상호 친화적이다. 과도한 물질문명 중심에서 자연회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오늘, 고향과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 현대시의 경우, 정지용 백석 서정주 김영랑 박재삼 등의 시에 나오는 고향은 객지에서 바라본 기억속의 고향이 주로 시의 모티브가 되었다. 특히 남도 향리 출신 미당의 <질마재 마을의 신화>등은, 한국적 토속 정서의 빼어난 시정을,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경우, 한국 순수시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굵직한 족적의 선배문인을 배출한 고장 남도는, 오늘의 양치중 시인의 시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고향은 정신적 성장의 바탕이 된다. 어린 시절의 추억, 혈연과 친구, 자연환경, 역사 유적, 설화나 유무형의 유산은 필연적으로 정신과 신념 가치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그대로 문학적 감수성, 상상력과 결합하여 작품의 창조적 생성에 상승적으로 기여한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의 경우,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바라본 고향 모티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고향에 남아서 고향과 함께 살면서 고향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우리 현실에 유의하면서 양시인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탐진강, 문학적 근원


고향과 더불어, 삶의 동반자로 문학적 감수성의 근원으로 자리한 고향은, 그에게 그의 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수려한 자연환경은 너그러움 포용 수용적 태도를 조장한다. 그런 정신적 바탕이 작품에서는 맑고 밝음의 시혼(詩魂)으로 형상화되어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구한 삶의 요람

어머니 품속 같은 탐진강 하구

바다 강물 끌어안은 들뜬 몸짓

뜨겁게 포옹하는데


천혜의 청정해역

눈앞에 전개된 광활한 갈대숲

미풍에 스러지는 환상의 율동

철따라 부활하는데


아름다운 풍광에

찾아드는 철새들 백조의 낙원

썰물로 알몸 되어 숨 쉬는 갯벌

짱뚱어 뛰노는 천국


지울 수 없는 낭만

생태환경보존지역 동경의 세계

다양한 육 해 공 동식물 서식지

강진만 생태공원.

-<강진만 생태공원>



여름날 땡볕에

머리 골 지근지근 띵띵 치고

등줄에 줄줄 소금물 짜는

칠월하순 영랑생가 뜰


모란은 떠나고

한그루 수은행나무 푸른 잎

하늘로 솟은 무성한 가지

붙들고 오른 궁녀 능소


커다란 귀 열고

행여나 지나는 임의 발소리

들려오나 기다리다 지쳐

슬픈 넋으로 핀 능소화

애절한 몸짓 한결같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

-<영랑 집 능소화>


앞의 시는 시인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 청정해역의 풍광을 리얼하게 그려 보여준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과장이나 수식을 자제한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공원은 그 자체로 ‘천국’이다. 탐진강을 ‘어머니의 품속‘으로, 바다와 강물의 조우(遭遇)를 뜨거운 ’포옹‘으로 의인화하여 극적인 감동을 준다.

이 시에서 두드러진 것은 보편적 원형심상의 시어들이다. 원형(原型)은 오랜 집단무의식의 이미지다. 강, 바다는 탄생과 죽음의 이원적 의미를 함축한다. 그래서 대지(어머니)와 함께 생명의 근원, 존재의 원천이 된다. 한편으로 자연과 인간의 대조, 정지된 풍경(갈대숲 갯벌) 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는 것들(물 새 바람)의 대조는 우리 삶의 무상(無常)을 대변해주는 침묵의 전언이기도 하다.

  

뒤의 시는 이 고장 출신 김영랑 시인 생가풍경을 그렸다. 단순한 정물이 아닌 서사의 극화를 보듯, 감추어진 의미맥락에 주목하게 만든다. ‘모란은 떠나고’에서 중의적

표현이 의미심장한 비의(秘意)를 전한다. 표면상으로는 모란이 지고 난 허전함이지만, 숨긴 뜻은 모란의 시인 영랑이 떠나고 텅 빈. 부재(不在)의 아쉬움이다.

<커다란 귀 열고/ 행여나 지나는 임의 발소리/ 들려오나 기다리다 지쳐/

슬픈 넋으로 핀>에서 능소화(시적 화자의 분신)는 부재의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주체이다.

‘궁녀 능소’에서 능소는 예사롭지 않은 신분이다. 따라서 기다리는 대상(님, 영랑)이 귀한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그녀가 <기다리다 지쳐/ 슬픈 넋으로 핀>화신이라면 그 기다림은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숙연하게 해준다.

위의 두 작품을 통해 시인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 향리출신 선배시인에 대한 존경과 흠모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준다.


고난의 내력과 극복

 

고향에 남아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모험일지 모른다. 어쩌면 떠나는 자보다 더 큰 용기와 인욕(忍辱),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지나온 기억과의 갈등과 극복, 그것이 눈물겨운 회한이거나 외로움과 서러움, 또는 그리움일지라도 그 경계를 모질게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사시던 세상

어렴풋이 알 것 같아 괴로워


조부모님 병들어 세상 떠나고

고아 되어 울부짖는 거지가

남의 집 머슴으로 살면서

(중략)

피와 땀과 눈물 뜨겁게 흘려

산처럼 쌓인 희수고개에서

이제는 후회도 미련도 없이


세상에는 내 것도 없고

공짜도 없다는 것 알고부터

편한 마음은 석양노을.

희수稀壽고개에서

 

편모슬하에 오십년 살던

외아들 환갑에 삶을 버린 어머니

작별 후 이십년 텅 빈 가슴에

날마다 간절한 그리움만 쌓여


병든 몸에도 거룩한 모정

하나뿐인 아들 노년에 이르도록

밤마다 가슴조이며 애태우다

별빛으로 처량히 반짝이는데

(하략)

- 거룩한 모정

        

지나간 것 붙잡아 둘 걸

지나올 때 가지고 올 걸

이제 와서야 아쉬워 한 들

가슴만 아려오고


되돌아가려니 다리아파

차라리 산 고개 넘어야지

정상향한 의지 불태워

희망하나 거머쥐고


고달픈 몸 순결하게

시들지 않은 맑은 영혼

밤하늘 수놓은 별빛처럼

보석으로 남기며.

-맑은 영혼


앞의 시 <희수 고개에서>나 가운데 <거룩한 모정>은 시인의 자전적 고백적 시편들이다. 이미 지나간 내력이라 해도, 부모 시대의 모질고 혹독한 가난과 운명은 차라리 지우고 싶은 멍에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그 시대의 비극적 유산을 극복해낸다.

시인의 ‘희수고개’는 피와 땀, 눈물이 ‘산처럼 쌓인’ 회한이지만 세상에는 ‘내 것도, 공짜도 없다는‘ 무상의 깨달음으로 풀어 내린다.


<거룩한 모정>에서 어머니는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영적 차원의 존재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헌신과 무한한 사랑은 결국 ‘별빛’으로 승화된다. 내면에 빛을 발하는 수호신으로 생사를 초월하여 함께하는 것이다.

뒤의 시 <맑은 영혼>에서는 화자 자신이 고난을 극복하고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개’를 터닝 포인트로 삼는다. 지나온 과거는 과거 시점의 일일뿐,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무관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 변화의 좌표를 설정한다.

그것은 ‘순결’ ‘맑은 영혼’ ‘별빛’이다. 절망에서 희망에로, 스스로 구원(救援)의 불빛이 되어 길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적 성취에 대한 목마름, 시작(詩作)을 통한 가열한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구원, 무상(無常) 그 너머


양치중 시인의 첫 구원이 문학이라면 궁극의 구원은 종교적 구도이다.

시인 스스로 서문에서 문학이 아니었다면 “인생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음을 고백한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서러움으로 괴로워하며 몸 둘 곳, 마음 둘 곳을 잃고 방황할 때 한편의 시는 메마른 영혼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처럼 절박한 운명에서 스스로를 구한 것이 문학이다. 이제 더 깊고 본질적인 존재로서의 자각이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고뇌와 희노애락을 넘어서는 무상(無常),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각성이다.

   

삼복의 언저리 어느 날

석양이 산 넘어 숨어버린

백련사 대웅보전 법당에서

합장하고 무릎 꿇었다.

(중략)

삶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면 질곡의 모진 삶

미련도 후회도 없는데

가슴 무너지는 원願 하나 세웠다.

(하략)

철야정진(徹夜精進)


이 시의 시간 공간배경은 석양 무렵, 어느 사찰 이다. 시간배경인 ‘석양 무렵‘과 ’삶의 끝자락‘이 묘한 대구를 이룬다. 공간배경인 ’질곡의 모진 삶‘(세간)과 ’법당‘(출세간)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고뇌 갈등(차안)을 넘어선 마음의 평화가(피안) 느껴진다.

‘무릎을 꿇는‘ 행위를 통해 나(아집)를 내려놓고 집착과 번뇌와 결별한다. 무상, 그 너머의 세계를 기원하는 것이다.

  

고려청자 음각

모란문 매병 하나

보고 있어도 알 수 없어

다시 보면 푸른 빛


세상의 모든 것

변하고 생멸해도

불 먹고 태어나 영원히

원형 보존의 신비

 

몸통 투명하여

맑고 밝아 은은한

실핏줄 얽혀 영롱한 선

모란으로 피어나고

 

유려한 곡선에

설레는 마음 담은

첫 연인 껴안고 부서져

매화로 환생하리.

-<고려청자 매병>


시인의 고장 강진 대구면 일대는 고려청자 도요지로도 유명하다. 흙과 불의 예술 도자, 그 중에서도 청자의 뛰어난 비색(秘色)과 예술혼은 한국 도자예술의 우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흙을 빚어 유약을 바르고 뜨거운 불과의 기나긴 기다림, 청자가 빚어지는 것이나 한편의 시가 빛을 보는 과정이나 유사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 변하고 생멸해도”는 도자의 불변성을, “실핏줄 얽혀 영롱한 선/ 모란으로 피어나고”는 도자의 생명성을, 섬세한 시의 언어예술로 묘사했다. “설레는 마음 담은/ 첫 여인 껴안고 부서져/ 매화로 환생 하리”에서 절창(絶唱)을 이룬다.

청자는 더 이상 정물 아닌 생명성으로, 그것도 설레는 여인과의 포옹으로, 이생도 모자라 다음 생까지 ‘매화’로 환생하겠다는 화자의 결의는 비장(悲壯)을 넘어 처연함으로 몸서리치게 한다. 언어예술의 또 다른 창조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날

머리위에 낮게 뜬 먹장구름

바람에 밀려 춤을 추며

이곳저곳 기웃대다

장대비로 사라지고


상쾌한 가을날

허공에 높이 뜬 하얀 꽃구름

머물던 흔적도 사라져

그 모습 그리움으로

빈 가슴 가득 메우고.

뜬 구름


마무리 예시 <뜬 구름>은 삶의 무상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 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바람’과 ‘그리움’이다. ‘바람’은 사라지는 것, 지난날의 허상이다. 과거를 함축하는 ‘비’와 지향을 함축하는 ‘꽃구름’은 다시 ‘빈 가슴’이고 ‘그리움’이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色卽是空) 텅 빈 것에서 모든 존재는 새롭게 태어난다(空卽是色) 이런 무위의 깨달음을 향한 영혼의 길이나 텅 빈 원고지에서 낙원을 꿈꾸는 시의 길이나 아득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양치중 시인, 그에게서 고향은, 천혜의 자연은 그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지난날의 고난을 극복하고, 한편으로는 문학과 삶의 무상을 일깨운 정신적 모태이자 시정의 근원이 되었다. 맑고 밝은 시혼(詩魂)을 불어넣어 군더더기 없는 남도의 서정을 풀어내었다. 현란한 수사기교보다 정직하고 맑은 감수성, 밝고 생동감 있는 언어구사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구원(救援)의 시학으로 승화시키는 불굴의 여정이었다. 지면상 향토성 짙은 여러 우수한 작품을 놓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도 양치중 시인의 시업(詩嶪)이 탐진강처럼 맑고 깊고 유장하길 기대 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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