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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l 09. 2020

간(肝)-시와 현실4

시와 현실/ 가슴으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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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출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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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윤동주 시인 (1917-1945)

3줄 약력

북간도 출생,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 지에 시 발표

교토 도시샤 대학 재학 중 항일운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1943)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1945)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窓과 倉 //////////////


윤동주 하면 <서시>를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그의 시정신이 절절하게 베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시 못지않게 윤동주다운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이 <간>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탈이라는 당대적 현실에서 가장 선명하게 치열하게 맞선 항일정신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의 시가 당대의 현실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그 선명한 양심의 채찍은 아프게 빛을 발하고 있다.


시 <간>은 동양의 설화 <귀토지설龜兎之說>과 서양의 신화를 절묘하게 융합시켜 주제의식을 부각시킨다.  둘의 공통분모는 ‘간’이다.  토끼는 거북에 속아 용궁에 들어가 자신의 간을 잃을 뻔했다. 프로메테우스 는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죄로 가혹한 형별을 받는다.   시 서두에 ‘간을 말리는’ 행위는 하마터면 간(양심 지조)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지켜야할 가치의 소중함, 다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절의(絶義)를 드러내는 행위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기른 독수리(정신적 자아)에게 화자(육신)의 간을 뜯어먹게 요구한다.  육신(나약한 자아)은 희생되더라도 정신(가치)은 지키겠다는 강한 결의와 속죄양의식을 나타낸다.


오늘 날 혼란의 시대일수록 이런 ‘간’은 매우 희귀하고 값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간은 찾기 어렵다.  특히 정치 관료사회의 행태를 보면 간은 장식품도 되지 못한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우선 개개인의 양심과 윤리이다. 그 다음으로 규범과 관습을 존중하는 법의 기둥을 세워야한다.  하지만 법이 만인의 규범이 되지 못하고 정치권력의 입맛에 좌우되는 현실을 보면서 시대의 ‘간‘을 떠올린다. 

법위에 군림하는 법무, 지휘권을 빙자하여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검찰을 압박하는 권력의 횡포를 보는 주권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청사 글, 시인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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