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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Dec 11. 2020

광란의 질주(疾走)-제1의 아해가 눈을 감은채   

-시와 현실 14

그림/ 빈센트 반 고호 작



[시와 현실 14 ]



광란의 질주(疾走)



왼손잡이 아해들이 도로를 질주하오

(나머지는 뒷짐지고 서서 구경을 해도 좋소)

구경꾼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구경꾼 제 무수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의 아해가 눈을 감은 채 도로를 질주하오

제 무수의 아해가 눈을 감은 채 도로를 질주하오

구경꾼 제1의 아해가 골목으로 도망가오

구경꾼 제 무수의 아해가 골목으로 도망가오

제1의 아해가 보이질 않소

제 무수의 아해가 보이질 않소

구경꾼 제1의 아해가 까마귀를 쫒고 있소

구경꾼 제 무수의 아해가 까마귀를 쫒고 있소

(관에 드러누워 못질을 당한 채, 이제 진실을 말해도 좋소)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무수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미발표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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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기청(시인 비평가)



///窓과 倉 ///////



우울의 현실, 단순 유의미한 도해(圖解)의 이미지로 풀다



▶이상(李想)의 ‘이상한‘ 시, 오감도-시 제 1호(詩第一號)에 대해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이상에 의해 한국시는 표현이 아니라 관찰이 되었고, 느낌의 방식이 아니라 인식의 양상으로 바뀐 것”이라 그 의미를 갈파했다.

어쩌면 ‘꿈보다 해몽‘이라 할지라도 그의 분석은 예리하고 유용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복잡하고 무의미한 현실을 단순하고 유의미한 ‘도해(圖解)’의 이미지로 풀어내려

한 것이다. 물론 그 심층에는 심리학 정신분석학적으로 강화된 복잡한 에고(자의식)가 작용하겠지만.

   

▶요즘 인터넷 열기가 무섭다. 한국의 정치현실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관상하려해도 도무지 길이 보이질 않는다. 오늘(20. 12. 10) 하루 동안 숨 가쁜 역사의 기록들이 산처럼 쌓였다. 그만큼 저지른 자의 업력도 산이 될 것이다. 국회에서는 한 번도 실행해 보지 않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통과되어 야당의 유일한 견제기능(비토권)을 묵살 시켰다.

헌법과 민주정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란 이름, 다수결이란 이름의 폭력이 버젓이 백주의 대한민국을 농락했다.

한쪽에서는 검찰총장 찍어내기 ‘징계위 플랜’이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광란의 질주’란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어디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모순이고 무엇이 모순의 모순인지 뒤죽박죽이 되었다.

차라리 이성을 버리고 자아를 해체해버린 상태에서 이상의 ‘단순 도해법‘을 떠올려 보았다.


▶이 작품은 그런 연유로 쓰여진 것이다., 외형은 이상식 도해기법을 패러디한 것에 내용은 오늘의 현실을 대입한 것이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서 두 갈래로 집약했다. 도로를 ‘질주하는 자와 구경꾼‘이 그것이다. 이상한 것은 질주하는 자는 왼손잡이다. 그 외는 모두 단순 구경꾼이다. 제1의 아해부터 제 무수의 아해까지 모두 질주본능을 가졌다. 정작 질주하는 자는 무서움을 모른다. 그래서 급기야 눈을 감은 채 질주하는 ‘죽음의 퍼포먼스‘를 즐긴다. 그기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까마귀‘다. 그의 검은 빛깔이 주는 상징성과 함께 까악 하는 소름끼치는 청각이 결합된 공감각적 심상이 극도의 불안을 고조시킨다.

급기야 질주하는 아해들의 행방불명, 구경꾼 아해들의 까마귀를 쫒는 척사(斥邪)행위를 통해 불길한 예감, 다가올 운명을 암시한다.


(글 기청, 시인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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