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문예통신] 22. 12. 5(월)
/송년 시 送年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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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는 것은 다
무엇이 되고자한다.
장마 속 잠깐 열린 기억의 빈 하늘
빨래 줄에 걸려 펄럭이는
속박(束縛)의 검푸른 넋
지난밤 내 꿈속을 몰래 헤집고 들어와
시간 밖으로 유영(遊泳)을 한다
거대한 검은 가오리 되어
유년(幼年)의 텅 빈 운동장
지키며 목쉰 소리로
펄럭이던 약속의 깃발
서릿발 가지 끝 몸을 떨던 나뭇잎
강물처럼 깊고 푸른 자국을 내며
펄럭이고 나부끼던 것들
막막한 어둠을 뜷고
목마른 갈증의 혼(魂)들 모여
긴긴 주검의 겨울 밀어내고
언 가슴 녹이는 훈훈한 입김으로
말간 개안(開眼)의 봄날
빛 부신 햇살로 어루만지는 꽃눈
덧없는 시간 속
펄럭이는 것들은 다
무엇이 되고자 한다.
출전; 월간 문학세계 22. 12월호(改作)
시인 문예비평가 (본명 鄭在承)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77)으로 등단
이후 시 비평 칼럼 등 다수 발표
대학 강사, 시사 교양신문 편집장 지냄
온라인 소통 [시인과 문예통신] 운영
시집으로 <風蘭을 곁에 두고><길 위의 잠><안개마을 입구>외 상재
시론집 <행복한 시 읽기> 산문집 <불멸의 새>(2022)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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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간 소식//
월간 문학세계 (발행 편집인 김천우 편집주간 윤재철) 송년호가 나왔다. 혹독한 팬데믹의 골짜기를 지나 약속의 바다에 이르렀다. 변함없는 개성의 얼굴, 참신한 신작, 식지 않는 열정으로 독자의 문을 두드린다.
주요 읽을거리는 시인 철학자의 감성 이야기(김천우) <먼 후일> 권두언(윤재철) <좋은 책 한권> 권두시(김태자) <한 생명> 명사 초대석(이성욱)의 <달과 나>
초대시 10인선에 기청(펄럭이는 것은 다) 김관형(숨결의 불꽃) 원수연(무거운 침묵) 정종규(자운영꽃) 등 신작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 외 특집 김종상(가슴에 벌레가) 기획연재 이상희(음주와 문학) 기획특집(김정은) 세계를 빛낸 명작가와 김종상이 뽑은 좋은 동시 맛보기 특집연재(유경환)로 암흑기 시문학의 원형적 상징성, 기획연재(조희길) 다시 날아오를 시조새를 기다리며, 책속의 소시집 시향이 있는 뜨락, 임신행 동화작가의 <그 집에는> 강신구 소설가의 <그랜저> 이달의 수필여행 등이 알차게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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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 22. 11월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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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효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다. 하지만 가장 중심적인 것은 마음의 정화가 아닌가 한다. 시인은 시 쓰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킨다. 독자의 경우도 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시는 마음의 거울이다. 그가 비록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해도 그의 거울에는 맑은 구름 한 점 비치는 호수일 수 있다. 현실의 고난 뒤에 따라오는 영혼의 맑은 축복 때문이다. 현상세계는 오욕(汚辱)에 쉽게 물들지만 정신은 본래 청정하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 삶의 고비와 수난을 기꺼이 견디면 영성의 눈은 더욱 맑아진다.
이번호에는 근자에 나온 문예지 중에서 ‘맑은 시’라는 주제로 텍스트를 골라보았다.
김병수 시인의 <봄>, 유자효 시인의 <말-2>와 이혜선 시인의 <不二, 서로 기대어>를 관심 있게 읽었다.
혼탁한 시대에도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함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의 이면까지를 관조(觀照)한다. 시인은 그런 심안(心眼)을 통해 존재의 이치를 깨닫고 맑은 감성을 깨우는 것이다.
꽃이 지니 봄이다
누구냐고 물을 것도 없다
봄 그대로 봄이다
천지가 꽃이다
나의 이름표를 뗀다
강 너머 친구야
살얼음안개를 깨고
너와 나 사이 봄을 피우자
꽃진 세상에 봄이 되자
-김병수 <봄>전문
(출전; 계간문예 22 가을호)
자연의 봄을 통해 ‘꽃 진 세상’의 봄을 회복하려는 염원을 담았다. 세상을 관조하는 맑은 감성을 일깨워준다. 첫 행에 “꽃이 지니 봄이다”고하여 낯설음의 진술로 시작한다. 꽃이 ‘피니’가 아닌 ‘지니’로 안타까운 정서를 드러낸다. 결미의 ‘꽃 진 세상’과 대응된다. 자연은 ‘그대로‘(과장이나 분별없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간세상은 복잡하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위장술을 쓴다.
허다한 시비분별(是非分別)로 산을 만들고 강을 만든다. 그 결과 스스로 고립되고
‘살얼음안개’에 갇힌 처지가 된다.
거짓과 모순의 인간세상을 순수 자연을 통해 비추어보는 것이다. 그런 반성은
“나의 이름표를 뗀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나를 드러내는 이름이나 표식까지도 부끄러운 것이다. ‘강 건너 친구’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하여 ‘꽃진 세상‘(얼어붙은 현실)에 환한 봄의 회복(화해와 공생)을 갈망한다.
그는 평생 많은 말을 하였다
말로써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글로 쓰기도 하고
여럿에게 전파도 했다
그러나
그가 한말들은
세상에서 모두 잊힘으로써
가장 선한 말이 되었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자효 <말 2> 전문
(출전/ 월간 문학공간 22. 9월호)
오염된 물을 그릇에 담아 가만히 두면 맑은 물이 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내면을 관조(觀照)하면 청정한 자성이 드러난다. 이처럼 세상의 불순물이 가라않은 맑은 시 한편을 보자.
언어(말과 글)가 왜곡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 도구가 되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긴 작품, 서두에 ‘그는’이 3인칭이지만 화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애초에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였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전략 가운데 가장 유용한 발명이었다.
하지만 현상세계를 오염시키는 강력한 무기로도 작동했다. 온갖 분별을 낳았다. [있다/ 없다]의 존재론에서부터 [맞다/틀린다]의 가치판단까지 시비분별의 근원이 되었다. 하지만 본성의 영역에서는 한갓 부질없는 것이다. 말과 글이란 언어를 초월한세상이 선(禪)의 영역이다.
<그러나 / 그가 한말들은/ 세상에서 모두 잊힘으로써/ 가장 선한 말이 되었다>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상위의 역설(逆說)이다. 후반부의 ‘그는’은 서두의 ‘그’와 대비된다. 여기서는 현상계를 초월한 각자(覺者)의 의미다. 그의 언어는(수많은 경전을 포함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유용한 방편이었다.
결미의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난해하지만 당연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아상(我相; 내가 있다는 생각)을 초탈한 ‘깨달은 자‘이기 때문이다. 근자에 와서 유자효 시는 간결하고 담백한 선시에 가까운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의 시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보여진다.
고속도로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
물방울에 기대는 물을 보았다
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 내려앉아
깊은 잠들고 있었다.
-이혜선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전문
(한국시학 22 가을, 자선시 5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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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년 월간 『시문학』추천으로 등단.
•동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제 32회 윤동주문학상, 제29회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외
•한국 문인협회 이사.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시집 『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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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서로 기대어>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우선 불이(不二; 둘이 아닌)란 용어에서 낯선 이미지를 풍긴다. 시에는 현상을 그린 평면의 시가 있는가 하면 대상 너머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입체적 다차원 시가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자연의 현상을 심안(心眼)으로 바라보고 진리(본성)를 유추해내는 각성을 바탕으로 한다. ‘나무’ ‘허공‘ ’물방울‘ ’갈매기 날개‘의 자연물은 작지만 ’산‘ ’나무‘ ’물‘ ’하늘‘과 같은 큰 것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큰 것이 작은 것에 기대는 것은 현상의 이치와 달라서 당혹 낯설음의 모순어법(시적 허용)이 긴장과 궁금증을 더해준다.
결미 부분에 와서 앞의 열거를 통합 조율하면서 차분한 결말에 도달한다. 결국 세상 만법(萬法)은 크든 작든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는 연기(緣起)의 논리로 귀결된다.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 내려앉아 / 깊은 잠들고 있었다.>
낮 동안 저마다 치열한 생존활동을 하던 생명들이 저녁이 되면 휴식에 들어간다. 잡초는 잡초끼리 기대지만 다른 생명체(하루살이)까지도 품어주는 자비의 실천은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 이것을 까맣게 잊고 사는 인간세상은 어떤가? 독불장군 안하무인 골육상쟁(骨肉相爭) 이런 살벌한 전투적 용어가 난무하는 세상의 끝에서 공생 자비 헌신과 같은 휴먼의 낙원은 멀기만 하다.
이런 시대일수록 시의 역할은 어설픈 철학보다 세속화된 종교보다 더 절실하지 않은가? 맑은 시 한편은 혼탁한 시대를 맑혀주는 샘물,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영감(靈感)과 본성의 외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