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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May 08. 2023

오월이 오면, 예술이 답이다

[이 계절의 시]

 

오월이 오면/ 엠마누엘 가이벨

 

 

 

나뭇가지마다 눈을 트니

누가 근심스레 집안에 머물겠는가!

 

흰 구름이 하늘 궁창에서 마음껏 떠도니

나도 드넓은 세계로 떠나고 싶구나.

 

아버지여, 어머니여!

신이 당신들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누가 알겠는가?

머나먼 땅에서도 나의 행운이 내게 미소를 보낼지.

 

그곳에는

내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도 많고,

내가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포도주도 많으리니.

 

땅거미가 지면,

시골마을의 작은 주점에 들르리라:

"주인장, 흰 포도주 한 병을 가져다주오!

그대 흥겨운 악사여, 바이올린을 켜다오!

나 또한 가장 소중한 노래를 부르리니."

 

오, 방랑이여!

오, 방랑이여!

그대 자유로운 젊음의 혈기여!

 

신의 숨결이 가슴속으로 싱그럽게 파고드는구나.

심장의 고동이 하늘 궁창에 이르도록

큰 소리로 외치며 갈채를 보내노라.

 

그대 드넓은 세계여,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엠마누엘 가이벨/ 독일 시인, 1815-1884

Geibel, Franz Emanuel :

 

엠마누엘 가이벨은 19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뮌헨 시파의 대표자이며, 우아하고 격조 높은 시풍으로 알려져 있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2세의 궁정의 후원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문학가로 활동했다. 당대 뛰어난 작곡가들은 그의 시에 음악을 붙였으며, 오늘날 19세기 가곡의 작시로서 적지 않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작품에 <신시집(新詩集)>, <6월의 노래> 등이 있다.

 

 

[문예 칼럼] //////////////

                                                      

                                          문학공간 권두메시지 원고/ 23. 4월호

 

균형상실의 시대, 예술이 답이다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요즘 자연도 균형감각을 상실한 모양이다. 매화가 피는가 하면 벚꽃이 피고 순차적인 기다림도 옛일이 되었다. 제주와 서울에서 거의 동시에 다투어 봄꽃이 핀다. 그러다보니 벌 나비가 채 깨어 나오기 전에 꽃이 시들어버리는 현상이 생긴다. 꽃의 궁극 목적인 씨를 맺지 못하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왜 이리 서두르는 것인가? 자연도 노후되어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인가? 

 

조금만 돌아보면 자연을 탓할 일이 아니다. 원인은 결국 인간의 절제 없는 욕망 때문에 생긴 일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리하게- 이른바 ‘더 증후군’이 기후위기를 부추기고 자연을 황폐화시킨 결과다. 문제는 가해자인 인간 스스로도 그가 행한 불선업의 과보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기계문명의 발전이 가져다 준 갖가지 부산물은 급기야 인간정신의 황폐화에 까지 이르렀다. 상실감, 상대적 결핍감, 패배의식, 우울감 적대감으로 세상은 분노와 고통이 행복의 자리를 밀어낸다.

 

인간의 감정과 정서 체계에 균형이 깨지면 갖가지 병리현상으로 발전한다. 이런 경우 예술은 훌륭한 치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정서 불균형은 정서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요즘 예술치료가 어느 정도 시도되고 상당한 진척을 보인다고 한다. 시를 감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다양한 음악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감정을 조절해가는 치유의 과정이다.

시를 통한 치유의 적용 가능한 가상사례를 들어보자. 먼저 “인간은 왜 사는가?”의 물음을 전제로 한다. 백인백색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오직 ‘일하기 위해서’사는 경우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

 

대부분 살기 위해서 일하지만 일이 좋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경우 천상병의 <소풍>이나 <행복>이란 시를 처방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歸天 / 천상병 

 

천상병의 숱한 기행과 오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삶을 따듯하게 감싸는 휴머니즘의 온기가 있다. 치유와 관련된 주정서는 사람은 나서 언젠가 죽는다는 ‘무상(無常)’혹은 행복과 설렘이 있는 ‘소풍’이다. 세상을 소풍가는 기분으로 산다면 얼마나 가볍고 설레는 것인가?

 

<금강경>이란 불교경전에는 ‘사구게‘라는 게송(시의 형식)을 통해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중에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던지는 것이다.

풀이하면 “응당 머무는 바 없이(집착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인간은 세상만사를 분별하고 좋다/ 싫다의 이분법으로 살아간다. 좋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리는, 이 단순한 분별을 통해 온갖 선과 불선의 과보를 짓고 끝없는 윤회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살기 위해서 얼마간의 분별은 유용할지라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감정과 정서체계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지혜와 자비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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