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그 울렁거림의 뒤안길

-시로 못다쓴 이야기/ 자전적 에세이

by 니르바나

신춘문예 그 울렁거림의 뒤안길


해마다 정월이 되면 ‘신춘문예’병(?)이 도지는 사람들이 있다

신문을 펼쳐들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혈압이 오른다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라도 할 듯 설렘이 시작되는

것이다 .


필자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일까? 요즘엔 오프라인 신문을 보는 사람이

많질 않다 주로 온라인에서 공짜로 제공되는 ‘인터넷판’을 검색하는 게

일상이다.

그 시절 만해도 이른 새벽에 아직 선연히 남아있는 잉크냄새를

풍기며 담벼락 위로 날아오는 조간신문을 기다리는 일은

울렁거림을 동반한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담벼락 위로 날아오는 조간신문

그 울렁거림의 기다림


벌써 40년이 된 그날의 아침도 피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었다 전보로 ‘입상’통지를 받고부터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선인지 가작인지 문구가 정확하지 않아 더욱 애를

태웠다.


저 비경(秘境) 수풀 속을/ 알몸으로 헤쳐 온 바람

끊긴 현의 떨리는 선율 위/ 몇 점 비늘로 파닥이다가

창살 끝 아픈 비명을 딛고/ 더덩실 춤을 춘다


서툰 노랫가락도/ 얼미친 장단도 없는

어지러운 조명 속, 끝내/ 눈먼 가슴은 타오르고

맴돌아 구천(九天)이 출렁여도/ 아직 끝나지 않는 나의 춤.

-나의 춤(동아 신춘문예 1977년 시조 당선작)


신문을 펼쳐들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당선작 이었다 며칠 뒤 당선작과 함께 심사위원의 심사평도 나왔다

초정 김상옥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축하의 메시지도

들어있었다.


얼마 후 주변의 가까운 문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초정 시인이 아니라면 그런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을까?

한편으로 뜨끔하면서도 내심 그의 단견이 불만스러웠다.

그렇지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시조와 안 어울리는 소재라고? 바로 그거야 내가 공략한 게

‘전통’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통속(通俗)‘에

길들여진 시조단의 ‘혼침(昏沈)’을 깨우고 싶었던 거지.

문단에 처음 겁도 없이 얼굴을 내밀던 시기가 20대 말, 한창 뜨거운

청춘의 분출기, 하지만 당시 70년대는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기 였다


군사정권 신군부 페퍼포그로 상징되는 불안 공포가 거리마다

좌절 분노의 소용돌이로 들끓었다.

나는 다행히도(?) 공직에 빌붙어 살면서 밤이면 헐렁한 글쟁이들과

어울렸다 <사상계>나 <문지>와 같은 잡지를 옆구리에 끼고

니힐이나 아나키즘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런 사회 현실적 한계의식이 내면화되어 작품 ‘나의 춤’에 반영된

것이다 대표 소재인 ‘춤’은 그런 불안 절망과 같은 관념을 형상화한

비유이자 상징이다 아직 그 춤이 ‘끝나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비극이지만

형상화된 ‘춤의 미학’을 통해 역설적으로 위안을 갖는 것이다.


당선작 나의 춤-시대의 불안 절망

형상화한 비유이자 상징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문우의 말처럼 아슬아슬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초정이란 인물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그럴 수도 있겠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났고 그것으로 나의‘춤’은 날개를 달았다

주제 표현 형식면에서 기존의 답습은 아니었다


시조라는 전통형식에는 파격(?)이지만 새로운 모색이라는 명제를 감안하면

실험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었다.

그 뒤로 90년대 이전까지 약 20여년을 시조라는 형식에 현대라는 정서를

담아내려 나름 혼신을 기울였다 .


<현대시학>등 지면을 통해 시조 비평 활동을 겸하면서 우리시, 전통 시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시란 측면 또 언어예술이란 관점에서 고민과 모색을

거듭해보았지만 시원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시와 시조의 장점을 결합시킨 ‘연행시조’란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지만

그도 여의치 않았다 한때 <월간문학> 등을 통해 연행시조를 간간히

발표하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문단 풍토가 새로운 ‘실험’을

쉽게 받아들이려하질 않았다.


<월간문학>지에 [문학 형식논쟁] 시조, 그 새로운 형식모색의 당위성(06. 7월호)

<문학저널>지에 [긴급 진단] 위기의 신춘문예시조, 오늘 그리고 내일(08.2월호)

등을 발표하여 형식논쟁에 불을 붙였지만 결과는 뜨뜨미지근한 미풍으로

그쳤다.


그런 와중에 이미 2000년대부터 내면에서 쏟아지는 자유로운 율격의 글감을

그대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조와의 결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을 뿐이다.

다시 신춘문예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의 간격은 무엇인가? 그 흐름의 변화는 무엇인가?

궁금했다.(계속)

(글- 기청 )

▶이글은 필자의 문예지 발표글입니다 (월간 문학공간 연재 16.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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