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그 울렁거림의 뒤안길2

-시로 못다쓴 이야기/연재

by 니르바나

[시로 못다쓴 이야기] 자전적 에세이/ 연재


신춘문예, 그 울렁거림의 뒤안길2


신춘문예의 역사는 우리 현대문학의 태동기와 그 궤를 같이 한다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시발로 해마다 글 축제의 성격을

갖고 신인발굴의 주요 통로로 삼았다 그보다 앞서 1912년 매일신보의

현상모집을 기원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문예지가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때라 그 존재감은 실로

크고 해를 거듭할수록 문단의 수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오늘날은 다양한 문예지가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도 2016년 현재

28개 신문에서 이 제도를 다투어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백화요란(百花搖亂)이요 용사혼잡(龍蛇混雜)의 시대다

이쯤 되면 신춘이란 말이 퇴색하거나 무디어질 만도 한데

아직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동안의 성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큼

다른 매체, 문예지 등의 역할이 증대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독자의 향수, 신인 응모자의 꿈이 서로 맞물려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해마다 관심 있게 읽어 본다 그 변화와

시대적 흐름의 특성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분석도 해본다

우선 기대와 설렘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와 설렘은 잠시뿐,

허탈로 이어질 때도 있다 기대가 너무 큰 때문일까?


처음 얼굴을 내미는 신인이니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 어딘가 어색하고 모자란 듯해야 신인다운

순수가 엿보인다 그런데 너무 매끄럽다거나 이른바

‘쟁이 냄새’가 풍기면 의심이 간다.


신인은 패기와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발전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다운 개성적 목소리는 경쟁에서 단연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시류나 경향성을 흉내 낸다면 그건 분명 감점의 요인이

된다 2016년 주요 일간지 당선작 몇 편을 살펴본다.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자유시 당선작 ‘생일 축하해’ 일부 (16조선, 안지은)


우선 읽으면서 화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도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제목부터가 너무 일상적-생일 축하해-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행은

-기일 축하해 하면서 전도된 의식의 유희(?)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현대시의 문제-산문성, 모호성, 관념성, 독백어조가

적당히 버무러진 몰개성의 칵테일 한잔 맛이랄까?


표현도 새로운 것이 없다 일상적 언어가 그대로 시어로 쓰인다

그럼에도 자칫 그 식상함을 대체해주는 백미(白眉)는 없지 않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런 단조로움을 극복 한다

살아있음의 익숙함을 통해 죽음까지도 수용하는, 역설적 인식이 그것이다

나아가 산자와 죽은 자의 소통을 통해 오늘 날 단절된 시대의 모순을

일깨워준다.


시간의 간격은 시대상의 차이-도전의지가 신인의 생명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껏 갈고있다


지난밤 팔지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시조 당선작 ‘날, 세우다‘일부(16동아, 정지윤)


우선 제목이 조금 색다른 느낌을 준다 시조의 제목으로 참신하다면

참신하다 동대문이라는 현장성 있는 소재를 취한 것도 그렇다

표현도 칼을 가는 쇳소리가 눈초리, 아침을 자르고 급기야

시간을 잘라 무화시키는 변용(變容)도 보여 준다.


그런 새로움에도 뭔가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은 뭘까?

선자(選者)가 지적한 대로 “고달픈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닌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주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는 현실에, 그런 건강한(?) 삶의 자세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닐까? 현실의 덕목은 익숙함 노련함 관대함이지만 시의 덕목은 그런

현실을 뒤집는 용기다 특히 젊음은 신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 패기가 그의 여정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간격, 내 기대는 다시 의문으로 이어졌다

시간의 간격은 존재 하는가?로 그렇다 시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만 시대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시는 시대를 반영하는 그릇이니

그 그릇에는 시대의 특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4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불투명성은 여전하다 다만 빈곤에서 빈곤-풍요

양극화로, 민주화 열망에서 개인의 자유로 이슈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시의 화두도 불확실성, 소통, 모호성, 관념성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는 많지만, 신춘문예 당선작은 많지만 감동을 주는 시는 잘 보이질

않는다 대중가요와 시의 경계가 모호하고 시인과 가인의 구분도 독자와

시인의 경계도 무너진 망망한 대해에 신인은 혼자 노를 저어가는

사공, 시계도 나침반도 없는 고독한 탐험가다.


하지만 신인은 신인다워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다듬어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의지가 주무기다

과거 신춘문예는 그런대로 희소성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문단 등용문이

넘치다보니 말 그대로 반짝 하루살이가 되기 십장이다.


눈치 보지 말고 자신에 가혹하라 비록 별똥별이 되더라도 장쾌한

패망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작은 반이 아닌 전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혼자 익숙하여라

신춘문예, 그 울렁거림의 뒤안길에서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 혹은

허공을 무대로 자신을 불태우며 장대하게 내리 꽂히는 별똥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반추해본다.

(글 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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