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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Dec 30. 2023

겨울 시-조병화, 계간문예 시 비평



시인과 문예통신 

(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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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단의 영원한 로맨티스트-편운 조병화 시인의 친필 그림


겨울 시 한편

     

겨울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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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   

조병화(趙炳華.1921.5.2.2003.3.8)  

   

 시인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 출생호 편운(片雲). 

1949년 첫 번째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고 문단에 등단

시집 먼지와 바람 사이》 《밤의 이야기》 《어머니시선집 》 등 상재 

수필 왜 사는가》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가 있다. 1959년 이래 

경희대 교수경희대 문리대 학장인하대 교수대학원장(1986) 역임

예술원 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세계시인회의한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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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시 비평 원고(23. 겨울호)    


自意識과 발견의 詩學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깨침은 본래 구도자가 추구하는 대상이다큰 깨침은 수행자가 도달하려는 궁극(窮極)이지만 작은 깨침은 시인이나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일어난다하지만 억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깊은 명상이나 성찰을 통해 문득 얻어지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삶과 현상을 성찰 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관심이 내면으로 향했을 때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침은 아지랑이처럼 떠오른다이는 영감(靈感혹은 지혜의 소산인 것이다새로운 발견은 과학자의 몫이지만 일상의 발견은 시인의 영역이다거창하고 위대한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일상의 소소한 삶에서 문득 낯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이것이 시상(詩想)이라는 시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현대시의 관건은 한마디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러시아의 형식주의 비평가  슈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가 주창한 말이지만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의 낭만주의자 노발리스 헤겔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시도된 것이다.  그의 주창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당시에는 주로 수사기교에 중점을 두었지만 오늘날은 시어 소재 내용 기법 전번의 혁신을 촉구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현대시는 습관적 일상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단순서정에 머무는 경우를 본다하지만 삶과 현상의 성찰을 통한 각성과 재발견은 우리시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고 보다 깊고 풍부한 시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지난 가을호는 여니 때처럼 풍성하다가을은 국화가 있어 아름답지만 시가 있어 더 향기롭다이번호 시 비평 대상작품은 계간문예 73(23. 가을호) <신작 시>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읽고 곰씹으며 또 읽고그러면서 시선이 멈추는 작품을 골랐다대상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의식과 재발견이라는 요소다자의식(自意識)은 내가 나를 지켜보는(성찰하는의식 이다이는 자기정체성과 관련되고 자아를 성숙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과하면(자의식의 과잉감정조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현대시에서 점차 비중이 커지는 심층심리 자의식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런 시의 모티브가 시를 어떤 경향으로 형상화 시키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기로 한다

           

참 이상도 해라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눈에 스캔해야하는데

부분이 부분을 눈곱만큼만 남기고 

전체를 까막눈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별 좋아 상큼한날 가리지 않고

바람 불고 비 뿌려 궂은날 캄캄한 날에도

밖에서는 안의 소리가 궁금하고

답답한 안에서는 탁 트인 밖의 행보가 궁금해서

-<고전적 취향>일부 (구순희)

     

살면서 가끔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내가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일시적인 정체성의 혼란이다현대인의 그런 미묘한 심리현상을 자유연상기법으로 그렸다(내면자아)과 밖(외부현상)의 대비를 통해 혼란과 부조화의 갈등이 증폭된다왜일까근본 원인은 존재의 불안정 때문이다변하고 흔들리는 현상 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근원(본질)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이런 자의식의 혼란과 궁금증은 보다 완전한 자아를 지향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비와 숲속 집이 담긴 그림 한 폭

청송 얼음골에도 

나비가 훨훨 날아든다

그림 속을 뛰어다니다  

산과 산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세상 저편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

물에 밀리고 불에 그을린다

어둠과 빛의 행간에서

그림자에 쌓여 사라진다

고장 난 장난감 같은 세상에서 

조난자가 옷가지를 찢어 만든 깃발

-<깃발일부 (심상옥)

     

이 작품 또한 앞의 시와 유사한 심리현상(자의식의 갈등)을 보여준다시적화자는 문득 풍경(현상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세상 저편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에서 단순한 환각상태가 아닌 시적화자의 심층심리를 보여준다그것은 현상에서 쫓기고 부대끼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다.  <고장 난 장난감 같은 세상에서>는 현실을 부정하는 심리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아의 한계를 보여준다. ‘깃발은 그런 절박한 현실에서 새로운 희망(갈등이 없는 이상향)을 향한 구조신호인 것이다. 

    

더 푸를 수 없어 물들여야할

가을 끝자락에서모두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중략)

내 머리에도 억새꽃이 피었구나

--<억새꽃일부 (윤만영)

     

계절 혹은 삶의 무상과 가을 서정을 노래한 시다앞의 두 작품이 심층심리를 그린 것과 달리 자연현상을 통해 화자의 현실을 자각(재발견)하는 것이다. ‘억새꽃과 내 머리의 백색 심상이  화음을 이룬다가을의 떠나감과 노년기의 쓸쓸함이 대비되어 고적(孤寂), 무상(無常)의 정서를 고조시킨다. 

         

소복소복 눈 내릴 때면 하얀 마음으로

파릇파릇 비 내릴때면 파란 마음으로

고요히 행복햐야할 날을     

꽃향기 그윽한 

용맥위 혈에서 혈로 영원하게

이어갈 불멸의 날을

-<왕방산에서>일부 (김기원)

     

왕방산이란 자연현장에서 느낀 상상과 감회를 노래한 작품, ‘신라 헌강왕 고취행사의 고사(故事)를 배경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언잰가는꿈속 여정이 될계곡 위 꽃길>에서 세월의 무상을 느낀다하지만 <고요히 행복해할 날> <이어갈 불멸의 날>을 통해 화자가 지향하는 낙원의식이 드러난다시간성의 무상을 통해 역설적으로 불멸을 각성(재발견)하는 것이다.

     

바스스

모래로 된 천정이 사방에서 무너져 내린다

태어나기 전의 나조차도 미워지는 시간,

얼굴이라도 모래속에 처박으면 좀 나을까

(중략

그 침묵과 고요의  동굴 속에

짓이겨진나를 내동댕이 쳐두고

가만히 기다린다

빠져나올 때까지

--<동굴일부 (한송이) 

    

이 작품 역시 자의식의 가열한 쟁투(爭鬪)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다분히 저돌적 자학적이지만 깨어있는 각성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안다. <가만히 기다린다>는 무위(無爲)의 관조를 통해 도약을 시도한다자신의 몸을 철저히 옭아맨 곤충이 우화(羽化)를 통해 비로소 날개를 달고 깨어 나오듯그렇게 밝음의 세계를 열망한다.     

시의 모티브가 되는 내면성찰자의식의 발현일상 속 새로움의 재발견은 시의 낯설게 하기의 기법과 관련된다단순서정은 평면적이지만 기원 심충심리 근원지향과 같은 복합서정은 입체적이고 다변화된 양상으로 나타난다그래서 난해하고 명료성이 부족하지만 신선함 미지의 상상과 같은 독자의 지적 욕구에 부응하기도 한다.  

지면상 언급하지 못한 작품에 아쉬움이 남는다노년기의 텅 빈 마음을 달관의 시각으로 바라본 <길 끝머리에 앉아>(송연우알곡이 여무는 가을의 풍요와 소망을 노래한 <가을 곳간>(조미경), 자연과 삶을 대비시켜 내면의 허기를 성찰한 <석양>(송예영)

빗물과 눈물을 대비시켜 자아의 내면을 성찰한 작품 <빗물등 수준 있는 작품을 보여준 시인들에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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