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한국시학 봄호

by 니르바나
한국시학봄호.png


[한국시학 2018 봄호]


보리 굴비

-기청


너는 억울해도 참지

참을 만큼 참아도 더는

참을 수 없는 것


다만

그 맑고 빛나는 세상

새끼들 부푼 꿈을 풀기 위해

잠시 칠산 앞바다에 왔을 뿐


한밤중 영문도 모르게

거친 새끼줄에 줄줄이 묶여

볕도 안 드는 보리 뒤주에 갇혀

죄목도 모른 채


그제나 지금이나

줄줄이 묶여 가는 것들

입만 살아남은 굴비의 굴욕


본시 텅 빈 것을 둘로 갈라

오른쪽으로 엮인 것이거나

왼쪽으로 엮인 것 서로 삿대질하며


줄줄이 묶여가는 것들 보며

참을 만큼 참아도

더는 참을 수 없는 것은.



참고;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우리시대 현상을 풍자한 것임


////////// 시인의 말 //////////////////


알을 까기 위해, 자손에게 순정(純靜)의 디엔에이를 물려주기

위해 사명을 다한, 그래서 영광 법성포 칠산리 앞바다에

잠시 들렸을 뿐인데,

영문도 모르게 끌려와서 온갖 고초를 겪고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미라가---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보리굴비, 사대부 가문의 체통을 상징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 함부로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귀하신 몸이지만

우리시대, 회자되는 ‘보리굴비’는 입만 살아남은 ’굴욕‘의

상징이 되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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