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에세이
어린시절 몽당연필로 동시를 쓰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침을 발라가며 사각사각 낯선 눈길을 가듯 상상의 나래를 편다
비록 삐뚤거리며 그리다시피 글씨를 쓰지만 마음은 늘 마술사처럼 꿈을 그렸다
오늘날 기계로 글을 쓰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이 그런 느낌을 알 수가 있을까?
요즘은 섬세한 감정전달 보다 우선 용건을 먼저 전달하는데 목적을 둔다 문자 메시지나 카톡을 통해 전달하는 문자는 하나의 ‘부호‘와 흡사하다 게다가 해괴한(?) 축약 신조어로 세대차를 실감케 한다.
그러니 섬세한 감정 정서를 전달하는 문학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지 모른다
전철에서 보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이젠 경노석에 않은 머리 희끗한 신중년도 예외는 아니다
그 집착은 어디서 오는가? 스마트폰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새로운 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정보에 대한 목마름, 소통에 대한 욕구가 현실 아닌 가상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더욱 소외는 깊어가고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불통의 시대가 된 것이다.
다가오는 세기에는 또 어떤 깜짝 이벤트로 놀라게 할지 예측을 불허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이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고, 시를 해설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그런 SF 소설 같은 일이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해 1월, 홍콩 소재 한 로봇제조사가 인공지능 탑재인간 ‘소피아‘를 선보였다.
소피아는 여성 외모를 갖춘 휴머노이드로 눈을 깜빡이고 미소를 짓는 등 60여 가지감정을 표현하며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소피아의 대중연설 중 한 청중으로부터 깜짝 청혼을 받자 정중히 거절하며 “호의에 감사드린다”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느닷없이 “모든 인간을 파괴하고 싶다”고 말해 청중을 놀라게 했는데 나중에 농담이라는 해명을 하는 여유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 로봇이 시를 쓰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
실제로 인공지능 연구의 딥 러닝(deep learning·심층 신경망) 분야는 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진화해오고 있다
컴퓨터라는 인간의 연산능력과 비교가 안 되는 광속의 연산처리능력을 무기로 기계학숩, 강화학습 단계를 거쳐 예측학습, ‘자가지도 학습(self-supervised learning)’단계로 질주하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Amazon Alexa)의 가상비서는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고 요청에 답을 제공하는 등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자연어처리는 시스템이 사람의 언어, 억양 및 맥락을 이해하도록 가르친다 이를 통해 ‘알고리즘’이 감정이나 풍자와 같은 좀 더 어려운 개념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석학 ‘얀 르쿤‘ 뉴욕 대학 교수(페이스 북 수석 AI 엔지니어)는 소파아의 경고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을 시킨다 아직 소피아는 그가 하는 말의 심층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 한다.
어쨌거나 우리의 미래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다 감성은 메마르고 본성의 우물은 바닥이 드러나보인다 그 사이 미래과학은 브레이크도 없이 질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실정은 어떤가? 정치는 정치대로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모순의 덫에 걸려 삐걱거린다 문화와 예술은 정치의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허약과 빈궁(貧窮)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방향을 잃어버린 창작예술은 저자거리에 방황하고 문학은 마른 시래기처럼 혹한의 찬바람에 나부끼고 잇다.
그럼에도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동상으로 뭉개진 뼈를 세우고 살을 봉합하여 무디어진 감성을 깨워내야 한다 기억 속에 아련한 ‘몽당연필의 감성’을 살려, 우성 DNA로 후대에 물려주어야한다 기해년(己亥年) 황금 돼지해를 맞으면서 한국 문단에 축복의 황금비가 내리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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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1977)
이후 시 비평 칼럼 등, 문예지 미디어에 다수 발표
경남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1987)
(논문; 이육사 시 연구-시간 공간 구조 중심)
온라인 소통 [시인과 문예통신] 운영
시집으로 <길 위의 잠><안개마을 입구>등 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