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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Nov 21. 2019

오늘의 굴곡은 하얀 뼈조각을 남긴다

[문예 FOCUS]


계간 문예지 <현대시문학> 겨울호가 12월 초 전국 서점에 배포될 예정이다.

내년이면 창간 20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통권 49호를 내어 중견 문예지 반열에 서게 되었다.  우리의 열악한 문예지 환경 속에서 20년을 버티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발행인 겸 주간인 양하 시인은 <현대시문학>을 2001년 창간했다.

그는 창간호 권두언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끌어안는 시 전문지로서 기성시인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고루 문호를 개방 한다”는 결의를 밝힌바 있다.

 

계간 문예지 20년, 고집스런 신념의 성과


우리 교육이 입시와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 대한 반성이었다. <현대시문학>은 시 전문지로서 손색이 없는 기획력으로 척박한 문예지 환경을 극복해왔다.

동시에 문학의 정서함양이라는 순기능을 교육현장에 적용하는 노력을 시종일관 지속해온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 규모의 ‘현대시문학 청소년 문학상’이 17회째 이어오고 있는 것은 양하 발행인의 남다른 관심 때문이다.  문학과 교육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실천하는 중요한 업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예지는 그 시대의 타임캡슐이다. 작가의 눈을 통해본 프리즘은 순박한 정서를, 시대안(眼)은 양심을 대변 한다. 오늘의 굴곡은 하얀 뼈 조각을 남긴다. 정신예술의 ‘사리’인 것이다. 문예지는 결국 시대와 역사의 생생한 증언에 다름 아니다.

 

<현대시문학> 이번 겨울호에는 무게감 있는 특집과 기획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신춘문예 출신 작가 특집과 평론 특집이 비중 있게 다루어져 독자의 관심을 끈다.

‘신춘문예 특집‘으로 이윤훈(조선일보 2002) 이서빈(동아일보) 김왕노(매일신춘) 이해원(세계일보 2002) 송유미(경향신문) 권영하(부산일보, 현대시문학) 강대선(광주일보) 박복영(경남신춘 월간문학) 송연숙(강원일보 2019, 시와 표현)등 시인의 작품과 ’평론 특집’으로 장병훈 “가슴 속 붉은 밑줄을 긋는 황홀경”(백현국 평론가) 문태준 “현대인에게 유용한 서정의 가치들”(박철영 평론가)이 돋보인다. 

또 기청 시인(동아일보 1977)의 ‘신작 소시집’ <눈부신 날의 눈물>등 5편과 이경애 시인의 감상문이 함께 실려 있어 시인의 작품을 다른 시인의 감상문 형식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방식,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신춘문예 특집, 평론부문 집중적으로 조명

 

또 ‘오늘의 작가’는 각 문예지 출신 박완호 최을원 강미정 등 비중 있는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기획특집 3, 4는 평론가 이충재의 “하이퍼텍스트 시의 현주소를 가다”와 평론가 장계현의 “감각과 정수에 대한 한 소고”가, 기획특집 6은 이정훈 평론가의 “시원(始原)의 바다, 삶의 중심”이 소개되어 평론부문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신작으로는 신작 시 특선 1, 2와 신작 수필이, 기획특집 7은 한라산 기행으로 양하 시인의 “아내는 악녀다”가 눈길을 끈다.

문예지의 꽃인 신인상 발표는, 시 부문 박성주 전기풍 수필부문 줄리아 헤븐 김의 

‘덤으로 받은 선물 같은 시간’ 외 1편이 차지하였고, 제 17회 ‘현대시문학 청소년문학상’ 당선작 발표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알차게 실려 있다. 


 (글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값; 15000원  구입처; ahj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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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문학 겨울호 원고


<눈부신 날의 눈물>외 4편

  기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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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날의 눈물

-오월 찬가



오월의 빛남,

오월의 눈물,


오월, 그 눈부심의 뒤꼍으로

눈송이 펄펄 꽃잎 날린다

이 아름답고 벅찬 햇살 한 모금

구김살 없는 너의 환한 가슴을

보지 못한 채 지난겨울

죽어간 그들을 생각하면


날리는 꽃잎은 빛남

날리는 꽃잎은 눈물


천만 개의 만장으로 나부끼는

혼(魂)들의 축제 아닐소냐

이 땅의 너와 우리

칡넝쿨로 칭칭 어울려 어우러져


나팔 불고

징소리 강강 강강수월래

오월은 숙적(宿敵)의 너와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가슴 풀어 하나가 되어


강물 그냥 흘러가듯

바람 그냥 나부끼듯

꽃잎 그냥 흩날리듯.



거기 까지다


드높이 솟아오르는 산도

구름이 머무는 곳, 거기까지다

지칠 줄 모르고 오르는 능선도

바람이 머무는 곳, 거기까지다

나를 밟고 오르는 계단도


적색의 비상구가 막아서는 곳

까만 동공(洞空) 거꾸러져

조락(凋落)의 나뭇잎 바람에 흩어지는

추락하는 날개 아래

빙빙 맴도는 거기까지다


해가 저물기 전에 

하산을 준비해야한다

빈 고사목(枯死木) 가지 끝에 푸른

눈썹달 뜨기 전에.



조국(祖國)을 함부로

-육사(陸史)가 하는 말


조국을 아느냐

의열단을 아느냐

광야를 아느냐

청포도를 아느냐

차디찬 광야에서 뚝뚝 흩뿌린 

눈물을 아느냐


앞에서는 정의를 말하고

뒤에선 호박씨 까는

그런 위선은 말고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허망한 

탐욕의 줄타기 놀음은 말고


조국을 아느냐

육첩방 남의 나라 골방에서

문구멍으로 삐죽이 솟아오르던

숨죽인 빛의 광음(光音)을 들으며


하늘을 우르러던 조국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버려

나를 버려 우리를 민족을 대의(大義)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 지린내 나는 입으로

그 빛바랜 구호로 정의를 애국을

조국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빈 손


무심코 지나가다가

가을 뒤꼍을 지나다가

잘 여문 알밤 하나

특! 내어던지는 소리 어둠 걷히고

번쩍 열리는 내안의 문


평생을 움켜잡기만 하던

집착의 밧줄 

올가미가 되어 목을 조여오던

깜깜한 어둠 꿰뚫어

특! 내어던지는 소리


마지막 한 톨까지 전부를 내어주고 

다시 빈손으로 선 너의 

가뿐하고 넉넉한 어깨 위 

내 마음속 깊은 언저리에


알 수 없는

한줄기 빛살처럼 곰삭은

울음 뒤의 희열처럼.



가을 장마


때늦은 가을 장마

축 늘어져 헝클어진 대추나무 가지

마구 흔들어 깨우는 빗소리

멈추고 서서


돌아보라 돌아보아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걱대며 가쁜 숨 몰아쉬며

때로 이름 없는

잡초(雜草) 아픈


모가지 짓밟고 뭉개면서

내 목숨 하나

내 피붙이가 전부라는

그 지독한 무명(無明)의 어둠에 갇혀

텅 빈 허공의

 

충만(充滿)을 알지 못한 채

다람쥐 채바퀴만 굴리며

내가 밟고 올라선

그 자리


누군가의 탄식인 것을

내가 뺏은 물 한 모금

누군가의

목숨인 것을 애써

눈 감고 부정하고 변명하던 위선


때 늦은 가을 장마

그 죽음보다 부끄러운 위선(僞善)을

헛되고 헛된 야누스의 가면(假面)을

부패한 양심의 뼈조각을


축 늘어진 대추나무 흔들어 깨우듯

마구 흔들어 깨우는

영혼의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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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나의 춤’) 당선(1977)으로 등단,

2000년대 이후 주로 자유시, 문예비평 칼럼 등을 발표했다  

경남대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공직을 거쳐 대학 강사

시사교양지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온라인 소통 <시사 문예통신>주필 운영

시집으로<풍란을 곁에두고> <길 위의 잠> <안개마을 입구>

시론집으로 <행복한 시 읽기> <대학국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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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시집 작품 감상

-이경애 시인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아픔이 있고

한 사람에게는 그 한 사람만의 상처가 있다


우리가 사는 날 중에 기꺼워 노래하는 날이 얼마나 될 것이며 울고 괴로워하는 날은 또 얼마나 될까?  시대의 아픔은 서서히 치유가 될 것이고 한 사람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이라는 유한의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1980년 나는 두 사람의 벗을 잃었고 천운으로 목숨을 부지한 한 친구는 수년에 걸친 병상생활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저것이 사람구실하며 살 수 있을까?..’ 속으로 아파했고 분노했으며 위로를 나누고자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지금은 일 년에 두어 번 생각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시대적 아픔에 완전한 자유는 없다. 또한 사람의 상처는 아문다 해도 흉터가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지나쳐온 시대의 간이역에서 아프게 작별을 하고 저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세상의 무심한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애련에 옷깃을 여미며 역사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

“오월 그 눈부심의 뒤꼍으로

눈송이 펄펄 꽃잎 날린다

이 아름답고 벅찬 햇살 한 모금

구김살 없는 너의 환한 가슴을 위하여

‘오월은 숙적(宿敵)의 너와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가슴 풀어 하나가 되어‘  기꺼이 살아가는 것이다.

처절했던 한 시대가 가고 다른 한 시대가 시작된지 19년, 사람들은 여전히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저녁이면 노을을 어깨에 얹고 아침에 걸어 나왔던 골목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 우리가 그렇게 일상 속에서 너무도 무심하고 태연하게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어디 한, 둘일까.

조국, 민족, 애국심...그런 거창한 대의나 명분 말고도 사랑, 그리움, 연민, 희망과 꿈..., 등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잠시 혹은 아주 오랫동안 한쪽으로 슬며시 맡겨두고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가다가 

가을 뒤꼍을 지나다가

잘 여문 알밤 하나 

툭! 내어던지는 소리‘에 

‘평생을 움켜잡기만 하던 

집착의 밧줄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뒤돌아보면 거기에 맑고 차가운 초저녁별 하나 있어 상심한 영혼을 위로한다. 


세상은 너무나 많은 위선과 음모와 부패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뺏은 물 한모금 

누군가의 

목숨인 것을 애써  

눈 감고 부정하고 면명하던 위선‘들이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어느 날 밤 문득, 깨어날 것이다.

‘영혼을 마구 흔들어 깨우는 빗소리에 말이다.


이 경애; 전남 곡성 출생 2013 <현대시문학> 등단, 시집 <견고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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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엔 어떤 책을 읽을까?

▶ ▶ 한 줄의 詩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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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감상 길라잡이

‘행복한 시 읽기' 출간 화제

                   

             시인이자 비평가인 기청 시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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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점/ 기청 시론집,  시집 <안개마을 입구>  <길 위의 잠>

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product.aspx?AuthorSearch=@1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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