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 : 변호사의 역할과 한계

"경찰과 법원에 협조할 순 있지만, 그 외엔 해드릴 게 없습니다.”

by 묵호고래

1. 추리소설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추리소설에 관해서는 접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수험생활에서, 4등급 받던 수리 영역 점수를 올리는 데 더 집중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친구들과 함께하던 독서 토론동아리에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추리소설이 주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학교에 있는 도서관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서강대 도서관은 ‘로욜라’라고 했는데요,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와 붙였다고 합니다. 로욜라 도서관은 가난한 대학생에게 따로 돈을 받지도 않으면서, 시원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환경을 제공해줬습니다. 돌아보면 로욜라 도서관을 제법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도서관 열람실에 남아 밤새 공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험 기간엔 책상 정리라든지, TV다큐멘터리라든지 공부 빼고 다 재밌다고들 하지요. 그때 제 흥미를 끌었던 것은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워낙 인기 있는 작가의 소설들이다 보니 최근에는 표지, 디자인이 리패키징되어서 나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당시 로욜라도서관에 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들은 붉은색의 양장커버로 멋지게 제본된 시리즈 책들이었습니다. 그 시험기간 중 특정해서 어떤 소설을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때쯤부터 추리소설 추리물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추리물 매니아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일본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일년에 한 두 권은 읽고 있습니다.



2. 나이브스 아웃

최근에는 네이버 멤버십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있는데요, 그 중 나이브스 아웃시리즈가 무척 재밌었습니다. 애거서크리스티 스타일의 정통 추리극이면서도, 007시리즈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극 중 주인공인 탐정 브누아 블랑은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사건을 범한 동기와 방법을 찾아내면서 속 시원한 반전을 이끌어 내고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탐정으로서 추리와 의견을 전달하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제가 하는 업무와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3. “경찰과 법원에 협조할 순 있지만, 그 외엔 해드릴 게 없습니다.”

극 중 브누아 블랑은 의뢰인에게 “경찰과 법원에 협조할 순 있지만, 그 외엔 해드릴 게 없습니다.”라고 자신의 추리능력의 한계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저희 사무실에 도움을 요청하시는 의뢰인분들께 제가 언제나 말씀드리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이 상담 중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곤 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이길 수 있나요.”, “변호사 도움을 받으면 안 잡혀갈 수 있나요‘, 같은 질문들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는 저희의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드리고,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판단은 저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극 중 브누아 블랑이 자신의 의뢰인에게 하는 ’그 외에는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와 같은 취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극 중 의뢰인이 그렇듯 실제 상담 중 저의 답변에 다소 서운함을 느끼시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4. 변호인의 역할과 한계

형사사건의 변호인은 의뢰인의 입장을 수사기관과 법원에 전달하여 사건 진행에 협조하고, 그 판단을 겸허히 기다리는 입장이 됩니다. 저희가 판단하고 검토한 의견을 기관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럼에도 사건을 진행하면 할수록 결과를 결정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