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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Apr 23. 2020

15일간 식단일기를 쓰며 한 생각

식단일기에서 발견한 나의 하루

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세상에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정도'가 좀 심한 편이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월급의 50% 이상이 식비로 나갔으닠바. 때로 사주기도 하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급자족하기도했다.


여튼 먹는 것에서 오는 만족도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다보니, 맛있는 한 끼를 먹지 않으면 기분이 많이 좋지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뭘 먹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먹은 것에 대해 스스로 인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뚱그려서 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방법이 '먹는데'에만 집중된 나머지, 먹고나서 곧잘 무얼 먹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싶기도 했다.


요즘 자신의 식단 사이클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폭식하고 있었다.

폭식한다 >> 폭식한 걸 되돌아보면서 자책한다 >> 스트레스 받는다 >> 다시 폭식한다


ⓒ sohyun yoon


뭔가 이런 루프가 무한반복되는 느낌이랄까. 체중이 늘어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몸이 무거워진다는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언가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PT를 시작했고, PT 선생님은 내게 초반에 식이까지 병행하면 되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차근차근 해나가자고 조언해주셨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모든 걸 손에서 놓아서는 안될 것이므로. 그렇게 식단일기를 조금씩 써보기로 시작했다. 일단은 내가 아침, 점심, 저녁에 뭘 먹고 간식, 음료로는 뭘 자주 먹는지 하나하나 잘 뜯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단 보고라기 보다는 식사 '일기'에 가까웠다.



식단표랑 식사일기, 뭐가 다른데?



ⓒ sohyun yoon


처음에는 먹는것만 적어야지 싶었는데, 먹었던 것들을 하나둘 나열하고나니 제법 '일기스러웠다'. 예전 파스타를 먹은 날, '양식 먹음' 수준으로 기억했다면 이제는 '치즈가 살살 뿌려진 볼로네제 파스타 3주먹 크기만큼 먹음/피클 0.3 주먹 크기 / 식전빵 0.3주먹 / 샐러드 2주먹 / 사이다 1캔 ) 이런 식으로 적어둔다. 조금 더 면밀하게 기억하게 된 것이다. (누구와 먹었는지도 기록한다)


아마도 하루를 평가하는 란이 있고, '감정 기록'이라는 란이 마련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식단일기에 웬 감정기록?'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적힌 질문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졌다.


- 오늘 식사를 마친 후 전반적인 몸의 느낌은?

- 오늘 식사에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 후회스럽거나 아쉬운 점은?

- 후회스럽거나 아쉬운 점에 대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모든 걸 제쳐두고 먹는데 에너지를 쏟았던 순간 전부가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틀림없이 감정적으로 놓쳤던 부분도 있다.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나는 아쉬운 것만 항상 남아서 결국 좋았던 것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


ⓒ sohyun yoon


처음엔 체중감량만을 생각해 식단일기를 써보자했지만, 다시보니 놓쳤던 감정의 기록을 찬찬히 해보는 시간을 갖게됐다. 회사에서 점심 직후에, 또는 집에 돌아와서 동생과 책상에 앉아서 오늘 하루를 이야기하면서, 오늘 먹은 것들도 정리한다.


오늘 저녁엔 마켓컬리에서 주문한 시장 통닭과 참기름 톡 넣은 파무침을 함께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동생이 사온 조각 케익과 스타벅스 콜럼비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식사를 마친 후 전반적인 몸의 느낌은 더부룩 하지 않아서 좋았고, 아쉬웠던 점은 디저트를 먹는 시간을 당기지 못한 것. 너무 늦게 먹으면 이제 소화도 잘 안되고 피곤해서, 시간을 좀 더 조절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됐다. 이렇게 조금씩 개선해나간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꽤 괜찮다.


-

4/8에 남긴 일기 : PT한 날에는 좀 더 스스로 신경쓰게 된다. 사이다는 안 먹으려고 하고, 홈런볼 군것질도 덜하려고 한다. 일단 얼른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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