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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Apr 30. 2020

4학년 막학기 휴학하게 된 SSUL.

점을 선으로 이어가는 과정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휴학 없이 잘만 다니던 대학을 4학년 마지막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결정했던 때가 종종 떠오른다.


중간고사로 분주하고, 학교 축제에 오게 될 연예인 소식에 설렜던 시기. 나는 휴학 없이, 진로에 대해 정한 것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한창 취업 준비해야할 마지막 학기에 진로도 결정 안했다고?'묻고 싶겠지만, 그 당시에 나는 전공을 그럭저럭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어서, 졸업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논문을 쓰기위해 전공 실험실에 다니고 있었다.



이과에게도, 이송(이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순간이 있다


'문송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문과도 아닌 이과였지만, 그다지 취업이 잘 되는 이공계는 아니었다. 전기전자나 화학공학, 기계공학과 같은 공대생이 아니고서는 사실 취업이 어려운 이과 전공들이 있다. 전공을 살리는 선배들은 대부분 1)대학원에 간다, 2)실험 관련 자재 판매 영업직으로 들어간다, 3)농촌 지도사가 된다, 4)창업을 한다, 의 수순을 밟았다. 문제는, 선배들이 택한 진로의 로드맵에 내 관심사가 없었다는 거다.


ⓒ sohyun yoon


막학기 휴학하고 했던 게 대학생 기자단이라고?


당시에 한 대외활동의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기업에서 하는게 아니다보니 활동비라는건 없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들이 좋아서 계속 하게됐다. 막학기를 앞두고 있는 취준생이지만, 마음을 조급하게 갖고 싶진않았다. 진중하게 잘 고민해야하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에 대해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취업 준비해야할 때 대외활동이라니'라면서 내 멱살을 잡고 싶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가족이었겠지만, 4학년의 나는 취준보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누군가를 취재한다는 일이 매우 재밌었다. 함께 좋은 정보를 나누는 장이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외활동을 하던 네이버 카페에 취재했던 내용 조회수가 세 자리수가 넘어가면 너무 기뻤다. 서툴지만 사진도 종종 찍어서 올리곤했다.



그러니까, 난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이 바라는 것들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정말 하고 싶은 건 저울에 재지않고 냅다 뛰어들어야 돼, 너는 왜 그런 열정이 없니?' 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항상 그건 '용기'있고 그 도전을 감당해낼 '여유'가 있는 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얼떨결에 내버린 휴학 서류


삶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최대한 그런 변화를 미루는 편이라 대부분의 결정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는 편이다. 겨우 겨우 미루다가 떠밀려서 하게되는 타의적 기분마저 들었다. 알아보니 휴학을 고민했던 날은 휴학 마감일 전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갑작스럽지만 휴학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의외로 휴학을 허락해주셨다.



ⓒ sohyun yoon



인생의 선배들은 '휴학하는 동안 해야할 일을 명확히 하라'고 한다.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하나?

전공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휴학을 결정했지만, 딱히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재능이란 무엇일까, 누가 부여하는 걸까, 그렇게 답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의대 대학원을 권해주셨고 나는 기회가 되어 한 달 동안 의대 대학원 실험실 생활을 하게됐다. 생각해보면, '일단 해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지금보다 유연했구나 싶은 순간)



돈 벌 걱정은 안해도되지만
6년의 시간, 더 공부할 수 있을까?


전공에 따라 다르겠으나 의대 대학원 생활을 하면, 개인이 하기나름이지만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덜어낼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최소 4년 동안 실험실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 세상에 조건 없는 게 어디있겠냐마는, 나는 다시 대학교 1학년이 되는 셈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봤다, 나는 4년 앞으로 버틸 수 있을까.   



ⓒ sohyun yoon


   

결과적으로 한 달 실험실 생활을 해봤다. 박사 과정에 있는 선배들이 하는 실험을 돕고, 연구 주제에 대한 영어 논문에 대한 스터디를 했다. 그렇게 한 달. 내 마음은 대부분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 '제 길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의 생각도 관여되지않은, 나 스스로 결정한 몇 안되는 순간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부모님께도 실험실은 그만두었다고 했다. '졸업하고 어쩌려나'하고 막막해하셨으리라,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비로소 든다.




그리고 졸업 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확하게 2년 2개월이 걸렸다. 간헐적 알바를 하고, 돈에 쪼들리면서도 '글을 쓰는 일'이 하고 싶어서 사소한 일들을 도맡아했다. 중소기업을 소개하고 취재하는 인터뷰부터 기업 공모전 시상식 인터뷰와 사진촬영 같은 일들, PR 기사 쓰기 등을 했다. 아마도 계속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어떻게든 점을 선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
계속해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어느덧 여기까지―


ⓒ sohyun yoon



그렇게 흘러흘러 생물학도는 콘텐츠 에디터로 일을 하고 있다. 영상 촬영 현장에도 나가고, 홍보영상 기획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이렇게 의식의 흐름들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남기는 두서없는 글.


1. 경험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당시에 스물 셋인 내 나이가 너무 많은 줄 알고 조바심 부렸는데, 이게 웬걸 전혀 그렇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더 미루면 더 늦어지는 거다.


2. 계속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조금씩 계속 하자. 정도가 아니어도 된다. 신입이 어렵다면, 다른 곳에서 경력을 쌓고 경력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친구는 네*버 입사를 꿈꾸었지만 비전공자였다.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3-4년 경력을 쌓아서 네*버에 입사했다. 원하는 곳에 지원하게 되면, 그 애정만큼 비례해서 결과가 좋지않을 때 낙심하기 쉽지만, 우리 조금은 훌훌 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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